지난 해 3월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방미 경제인단에서 제외되고 11월 인도네시아, 12월 중국 방문에서도 빠졌다. 재계에선 ‘권오준 패싱’을 사임 압력으로 해석했으나 권 회장은 굳건히 버티다가 결국 사퇴 수순을 밟았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됐다. 정부는 단 한주도 지분이 없다.
황창규 KT 회장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재계는 황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화되면 KT는 남중수, 이석채 전 회장에 이어 3연속 CEO가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KT도 2002년 민영화됐다.
두 회사에 관한한 우파정권이나 좌파정권이나 입맛에 맞는 CEO 줄을 세우는 건 마찬가지다. 한발 더 나아가 규제산업의 특성으로 정부 입김이 강한 금융사 지배구조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것도 정권승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정부가 개별기업의 실적과 미래 청사진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거면 CEO 인사에도 관여하면 안 된다. 누구는 안 된다고 사퇴압력을 넣으면 강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만들기 위해 나랏돈으로 세워진 포스코, 통신주권을 세우기 위해 출범한 KT. 민영화됐지만 두 회사의 성공이 대한민국에도 좋다는 건 지금도 통한다. 이를 위해 확실한 주인을 찾도록 방향타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주인은 없지만 초일류 기업이 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벤치마킹하시라. 이사회와 후계자 프로그램이 작동하도록 정부는 손을 떼라는 얘기다.
포스코는 임직원 1만7000여명이 연간 6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계열사 39개. KT는 2만3000명이 23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계열사 34개. 매머드 기업의 CEO가 예고 없이 날아가는 건 비극이다. 조직 동요가 크다. 서둘러 CEO를 뽑아야하는 이유다. 새로 선출되는 CEO는 주주와 투자자만 쳐다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내부 조직을 잘 알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후보가 적임자다. 스펙 좋고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사람보다는 불굴의 돌파력과 조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출중한 후보를 뽑았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손’들도 이런 점을 잘 살피시라. 회사가 쑥쑥 성장해야 논공행상 낙하산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