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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어떤 이들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이름인 줄 안다. 하지만 현대예술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궁금증이 커진다. 과연 어떤 식으로 교육을 했기에 한 세기가 지나도 명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에 의해 설립된 예술·디자인학교다. 예술의 다양한 장르가 궁극적으로 건축을 통해 통합되고 나아가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예술가를 양성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문을 열었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에 매진했다. 바이마르에서 개교한 바우하우스는 1925년 옛 동독지역인 데사우로 이전한 뒤 1933년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국가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폐쇄됐다. 바우하우스의 역사는 짧았지만 이후 20세기 예술사조에 큰 영향을 미치며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
전시를 둘러보면 새삼 바우하우스가 현대의 고전이 이유를 알게 된다. 기능이 아닌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예술을 제시한 바우하우스의 첫걸음은 신체훈련이었다. 오스카 슐레머의 ‘사고의 궤도 안의 인간’ 같은 그림을 보면 몸을 관념이 아닌 실체로서 인식하도록 했던 교육과정이 감지된다.
당대의 첨단기기를 받아들여 각종 전자장치를 예술과 접목하는 데 힘썼던 흔적도 보인다. 1922년에 쓰인 ‘반사조명 놀이기구’에선 비디오아트의 뿌리를 유추할 수 있다. 인물과 배경 등 2차원적인 무대활용에서 벗어나 3차원적인 원근과 공간의 창출을 도모한 요스트 슈미트의 ‘기계적 무대’ 도면과 발터 그로피우스의 ‘총체극장’ 등에서는 시대의 전위였던 바우하우스의 예술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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