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적막을 깬 건 장을 보기 위해 경창시장을 찾은 김수영 양천구청장이었다. 남편에게 ‘떡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김 구청장은 아침밥은 물론 등산 갈 때도 김밥 대신 떡을 챙겨갈 만큼 즐겨 먹는다. 그래서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냉동실에 쟁여둘 떡 구매는 필수 코스다.
이날도 어김없이 떡집을 찾은 김 구청장은 진열대 앞에 서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가장 좋아하는 쑥떡과 함께 6종류를 골라 담은 그는 5만원을 가게 주인에게 건네며 “다음에 와서 또 사갈 수 있게 영수증에 남은 잔액을 적어 주세요”라고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날 1만5000원어치 떡만 가져가고, 거스름돈을 따로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잔액인 3만5000원을 다음에 쓰기로 떡집주인에게 약속했다. 이는 서울 양천구가 진행하고 있는 ‘착한소비 캠페인’의 일환이다.
|
특히 지난 7월 말부터 진행 중인 ‘착한소비 3탄’ 캠페인은 착한소비를 독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수증 모아 지역경제 살리기 이벤트’를 더했다. 관내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에서 5만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을 모아 거주지 동 주민센터에 제시하면, 주방 세제 등 생활용품을 지급한다. 주민들이 착한소비를 할 수 있도록 일종의 유인책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는 현대백화점 목동점 등 민간기업의 물품 후원을 통해 민·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민 반응도 좋다. 양천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주민 2373명이 영수증 이벤트에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이 후원한 주방세제 3000개 가운데 80%가 이미 지급됐고, 이달 중 나머지 600여 개도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양천구는 증정품이 한 달 여 만에 동나면서 관내 다른 기업과 착한소비를 이어갈 방안을 현재 논의 중이다.
이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주민 이순길(67세)도 영수증 이벤트 참여차 주민센터를 찾았다. 이 씨는 “떡집에서 5만원을 선결제했더니, 주민센터에서 세제를 준다고 알려줬다”면서 “물건을 사면서 생필품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어려운 가게까지 도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이벤트 취지가 좋은 만큼 과일과 야채, 고기 등 자주 사는 품목 위주로 단골가게에서 선결제를 추가로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구청장 역시 자주 찾는 미용실과 집 앞 골목상점에서 선결제를 해두고, 차감하는 방식으로 서비스와 제품을 이용 중이다. “평소 같으면 한 달에 두 번 정도 뿌염(뿌리염색)을 하는데, 코로나19로 방역이 강화되면서 미용실 방문도 뜸해 지더라고요. 동네 미용실 사장님들께서 손님이 줄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셔서 다음 방문 때 시술할 금액을 미리 지불했어요. 막상 결제를 하고 나면, 남은 잔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달 꾸준히 가게 되네요.”
그는 “코로나19로 손님은 끊긴 소상공인들이 당장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출 밖에 없다”면서 “우리의 소비로 소상공인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고, 이왕이면 단골가게에서 착한소비를 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