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전 수석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지난 18일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이다’라고 올렸다.
작금의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은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저열함을 또 다시 드러낸 것이고, 적극적인 불매운동을 통해서라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어 대일 강온책을 병행해가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일본 정부를 궁지에 모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조 전 수석의 발언은 국민을 하나로 모으기 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부정한다고 해서 곧 바로 친일파로 간주할 수는 없다. 물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은 상당히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간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에 대해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반대의견을 개진한 대법관들도 기본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한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일본 정부와 입장이 전혀 다르다. 단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에 다수 의견과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조 전 수석은 울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글자로 공개했다. 책 제목은 ‘사상의 자유’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등장하는 제목은 ‘사상의 자유의 전면적 보장을 제창한다’였다. 조 전 수석이 서울대로 옮긴 직후에 출간한 ‘성찰하는 진보’에서도 그의 가치관은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권위와 폐쇄가 아니라 민주와 개방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민주주의의 활성화, 사상의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누구든 자기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개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한다. 일제강점기가 불법적인 식민지배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면, 정부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며 적극적인 홍보와 설득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한다. 적어도 정부의 고위공직자가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을 상대로 ‘친일파’니 ‘이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조 전 수석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진다. 법치행정실현의 중책을 맡게 된 조 전 수석이 장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을 기대한다. 다만 앞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싶으면 강단에 복귀한 후 교수 신분으로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