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문제 관료가 나향욱 한 명뿐일까

  • 등록 2016-07-14 오전 3:01:01

    수정 2016-07-14 오전 3:01:01

[하재근 문화평론가] 교육부가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 파문의 주인공 나향욱 정책기획관을 파면하기로 결정했다. 현명한 조치다. 교육부는 가치를 다루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줘 이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일을 담당하는 곳이 교육부다. 그런 곳의 관료가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가치관을 가졌다면 국가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 된다. 또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도 교육을 통해 ‘개천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교육의 정신이다. 그런데 나 기획관은 이미 양극화가 많이 벌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신분제 같은 체제로 가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효율성을 따지는 경제부처도 아니고 교육부 관료가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교육부는 양극화 현실을 보며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결의를 다져야 하는 부처다. 교육부가 지켜야 할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나 기획관의 반성과 사죄에도 의혹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반성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는 국회에 출석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분제 공고화 운운하지 않았고 ‘개돼지’ 발언은 영화 ‘내부자들’ 대사를 인용한 것이며 본심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그의 ‘개돼지’ 발언은 내부자들 속의 맥락과 달랐다. 내부자들에선 쉽게 잊는 국민의 냄비 기질을 빗댄 대사였는데 나 기획관은 신분제적 맥락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영화 의미가 아닌 나 기획관 본인 생각을 말하는 중에 영화 대사를 일부 첨가한 것인 셈이다.

또 정말로 신분제 공고화를 운운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을 전한 매체가 악질적인 음해성 보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가 자신의 해명을 믿는다면 해당 매체에 초강경 대응을 해야 맞다. 그러지 않고 위축된 자세로 해명과 사죄를 했다는 건 그 자체로 해명의 신빙성이 떨어뜨리는 일이다. 심지어 문제의 사건이 있은 후 그는 함께 대화한 기자들이 근무하는 매체에 사과방문을 했다고 하니 더욱 해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 기획관의 반성과 사죄는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진짜 문제는 국민의 실망과 불신이 나 기획관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무심코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평소에 그가 엘리트주의적 확신을 가졌던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다. 그런데 그는 교육부 관료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렇다면 교육부에 모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단 말인가. 서민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가 교육부의 기본 문화일까. 그래서 지금까지 교육정책이 파행이었나. 이런 의구심이 꼬리를 물었다.

문제 발언이 있었던 자리에 교육부의 다른 관료들도 있었다. 문제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태 초기에 진상파악 운운하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이번 일은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대처법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었다. 진실이면 중징계, 거짓 보도면 해당 매체에 대한 강력 대처다. 교육부는 초기에 둘 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초록은 동색으로 서로 덮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시대착오적 엘리트 의식을 가진 고위 관료가 나 기획관 한 명뿐일까. 그가 순진(?)해서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뿐 많은 고위관료가 국민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생각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만연하면 사회적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부터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닌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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