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신모(76·여)씨는 24일 오전 불탄 집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삽시간에 옮겨붙은 불에 아무런 대처도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자리를 배회했다. 그는 설 연휴를 앞두고 난 큰 불에 명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인근 호텔로 대피해 생활하고 있지만, 화재 당시 크게 타올랐던 불빛에 충격을 받아 불을 끄고 지내고 있다. 신 씨는 “자기 집이 타는 걸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그야말로 멍 때리고 서 있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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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또 나도 이상하지 않아”…‘저가 단열재’ 속수무책
이날 오전 찾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일대는 지난 20일 발생한 ‘화마’에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비닐 합판 소재 주택 약 60채를 포함해 총 2700㎡가 불에 타버린 자리에는 검게 그을린 가재도구 등이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같은 사고는 지난 2009년부터 최소 16차례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3월에도 발생한 화재로 11채가 소실됐고, 2017년 3월에도 주택 29채가 불에 탔다. 2014년 11월에는 고물상에서 벌어진 화재가 63가구를 태우고 주민 1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구룡마을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4지구 피해자 조모(69)씨는 “불이 또 날 수 있다”면서 “좁은 골목 탓에 차는 들어오지 못하고, 담요나 부직포, 비닐 같은 게 있어서 불이 잘 타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이모(69)씨도 “이번에는 겨울이다 보니 소화전이 다 얼어서 (화재에 대처하지 못했다)”며 “불이 또 나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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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고시원에 사는 김모(26)씨도 구룡마을 화재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열리지 않는 유리창이 달린 2평(6.61㎡) 남짓 단칸방에서 산다는 김씨는 “불이 나면 정말 문제다”며 “통로도 좁고 방도 좁다 보니 다 타 죽을 거다”고 말했다.
문제는 주택 이외 거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시군구별 주택 이외의 거처, 지하·옥상 거주 가구 비율’ 통계를 보면, 주택 이외 거처 가구는 지난 2010년 전국 기준 12만 9058가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 39만 3792가구로 2배 이상 증가한 뒤 2020년에는 46만 2630가구를 기록했다. 약 50만 가구에 육박하는 거주민들이 화재 사고에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임대주택을 보급하고, 공공보장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쪽방이나 밀집촌 등은 화재 차량이 들어가기 어려운 여건인 만큼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해야 한다”며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안전문제에 취약한 분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