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상한제 초읽기]폭풍전야 주택시장…도입까지 3大 난제는

분양가 주변시세보다 낮아져…'반값 아파트' 조장
"상한제 소급입법, 재산권 박탈"…조합장 소송 불사
"공급 줄어 새 아파트 희소…아파트값 더 오를 것"
  • 등록 2019-08-05 오전 4:00:01

    수정 2019-08-05 오전 4:00:01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하면서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주택 공급자인 건설사와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서둘러 분양을 해야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청약일정이 불명확해지자 수요자들도 내 집 마련을 언제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국토교통부도 신중해진 모습이다. 2007~2014년 도입 당시도 부작용이 컸던 터라 추가 장치 마련 등을 고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9년 미분양 아파트 16만호 양산, 상한제 예외아파트 고분양가 논란, 상한제 적용아파트 ‘로또’ 등극 등은 당시 전문가들이 꼽는 분양가상한제 시행의 부작용이다.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은 당시 상황을 트라우마로 여기며 분양가상한제 확대 적용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현 정부로서는 미분양아파트 소진을 위해 각종 세제혜택 등 정책비용까지 투입해야 했던 과거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최대의 과제를 끌어 안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5년 3월29일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앞둔 마지막 주말 휴일 경기 용인시 기흥역 현대엔지니어링 힐스테이트 모델하우스에 수요자가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3월27일부터 이날 오후 2시까지 사흘 동안 모델하우스엔 3만1000여명이 몰렸다. 사진=뉴시스
쟁점1-‘로또아파트 논란’에 채권입찰제 부활하나

분양가상한제는 정부가 매년 2차례 고시(3월 1일·9월 15일)하는 기본형 건축비(가산비 포함)에 땅값인 택지비(감정평가액+가산비)를 더해 분양가를 제한하는 제도다. 주변 시세는 물론 현행 규정에 따른 분양가보다 최소 20~30% 이상 가격이 낮아질 수 있어 로또 아파트 양산 등 주택시장을 더욱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를 막을 장치로 거론되는 것이 2006년 도입했던 채권입찰제다.

이 제도는 분양가와 주변 아파트 시세 차이가 클 경우 계약자가 채권을 사게 해 시세 차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수요자 중 예정액(상한선 이내)을 많이 써낸 순서로 분양권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개발이익으로 발생하는 주택 시세 차익의 일부를 반납하는 셈이다. 다만 이 제도는 지나친 사유재산 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참여정부 시절 성남 판교신도시와 고양 일산2지구 일부 아파트에 적용한 이후 2013년 폐지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채권입찰제는 과거 공공택지에 한정했던데다 미실현 이익을 환수한다는 측면에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규정상 민간택지에 채권입찰제를 도입하려면 새로운 법령 근거를 만들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쟁점2-정비사업장, 소급 입법 위헌 논란

정부가 상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등 정비사업 조합들은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특히 서울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수만 가구가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어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다만 규제 대상 적용을 어느 시점, 어느 단계까지 적용할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현행 주택법상 재개발·재건축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 단지부터, 일반주택 건축 사업은 입주자 모집 공고 단지부터 상한제를 적용받는다. 이 때문에 국토부가 민간택지 아파트에 상한제를 적용하면 ‘입주자모집공고일’로 대상 범위를 확대하거나, 공포 이후 실제 규정 적용 시기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경과 규정을 둘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집값 과열의 주범으로 지목한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주요 정비사업 단지 조합들은 소급 적용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최근 서울 주요 정비사업 조합장들은 분양가상한제 소급 적용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국토부에 제출하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섰다. 강남 B재건축 조합장은 “이미 관리처분인가 때 조합원 분담금을 다 확정했는데 상한제 적용으로 일반 분양가가 낮아지면 분담금이 대폭 늘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수익성이 낮아져 사업 자체가 멈추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재건축 단지들은 상한제 소급 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할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헌법 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 입법을 통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집값 안정이라는 공익적인 명분을 고려하면 위헌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세무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조합에 대한 상한제 소급 적용은 공익적 목적이 커 적용 가능한 부진정소급으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시행 과정을 보면 그대로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쟁점3-공급감소로 주택시장 왜곡 우려

‘규제의 역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공급 축소→ 로또 분양 확대 및 새 아파트 희소성 극대화→ 집값 상승’이라는 공식이 나타나면서 주택시장을 더욱 교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 서울에서 5년 준공 이하인 아파트는 전체의 8.9%에 불과한데, 지금처럼 재건축 아파트 등에 규제를 계속하면 2025년에는 0.6%로 줄어들 수 있다”며 “새 아파트 가뭄현상에 신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변 시세 대비 30%가량 낮아진 분양가로 공급하면 사업성 추락과 조합원 부담 증가로 정비사업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한제를 기존대로 공공 영역에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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