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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위키리크스를 사랑해요!(I love WikiLeaks!)” -2016년 10월 대선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위키리크스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요(I know nothing about WikiLeaks).” -2019년 4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지난 11일(현지시간)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사진 위)의 체포 소식이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유독 미국 주요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아래) 미국 대통령의 대(對) 어산지 발언 변천사에 주목했다. 왜 그랬을까.
트럼프 정치적 손익 따라 ‘어산지’ 비난→극찬 엇갈려
2010년 당시 트럼프가 “어산지는 사형감”이라고 언급한 건 당시 어산지가 받고 있는 ‘반역행위’ 의혹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산지는 2010년 3월 미 육군 정보분석 요원이었던 첼시 매닝(개명 전 브래들리 매닝) 전 일병과 공모해 국방부 컴퓨터에 저장된 암호를 해독한 뒤 기밀자료를 빼내는 등 불법행위를 지원한 혐의(컴퓨터 침입 음모)를 받고 있다. 어산지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기밀문서 수십만 건과 미군헬기가 이라크의 민간인을 저격·살해하는 영상을 위키리크스에 올려 ‘1급 수배 대상’이 됐다.
위키리크스가 트럼프의 정적(政敵)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 선거캠프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이메일 수천 건을 폭로해 힐러리에 타격을 입혔기 때문일 터다. 미 온라인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마지막 한 달간 각종 연설, 언론인터뷰, 토론회 등에서 초소 164차례나 위키리크스를 극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이메일들이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계된 해커들로부터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측과 러시아 측 간 내통 의혹,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의 시초가 됐다.
지금은 갈라섰지만, 한때 트럼프의 최대 조력자였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는 최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캠프 관계자와 어산지 간 통화사실을 공개한 후 “트럼프가 위키리크스의 해킹 이메일 공개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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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산지 체포가 가져올 ‘나비효과’의 힘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어산지가 러시아 스캔들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추정에서다.
당장 최대 피해자인 힐러리는 “요점은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도 “어산지를 소환하면 그의 정보 유통 방식을 비롯해 (러시아와) 그의 관계 등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산지를 통해 ‘러시아 스캔들’의 새 단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바람이다.
핵심은 미 수사당국이 향후 어산지에 대해 ‘반역’ 혐의를 씌울지 여부다.
현재 어산지는 미 당국으로부터 2010년 군사기밀 유출과 2017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도·감청 기밀 유출 혐의만 받고 있다. 반역혐의를 적용하면 ‘언론 자유의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영국 정부에 신병 인도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어산지가 미국에 송환되고, 이후 ‘반역행위’가 적용된다면, 2016년 소위 ‘힐러리 해킹’ 건 수사는 불가피해진다. 사실상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지는 셈이다. 자칫 뮬러 특검의 ‘면죄부’로 정치적 족쇄를 벗는데 성공한 트럼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러시아 스캔들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다만, 어산지 송환은 아직 먼 훗날 얘기다. AP통신은 “어산지의 변호인들이 장기간 법적 분쟁을 준비해왔고, 과거 전례를 보면 영국은 해킹 범죄자의 미국 송환에 호의적이지 않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뤄질 것”이라며 어산지 송환이 “수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