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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그날 오후의 안건은 서로 딴판인 제품기획안 세 가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사용자의 검색행동을 살피는 전능한 눈인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수익화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이 장면이, 시작이다. 페이스북은 당시 인터넷활동 중 절반쯤에 접근하는 걸로 알려졌던 터. ‘좋아요’ ‘공유하기’의 대박인기 덕분이었다. 원체 페이스북 서비스약관은 그런 데이터를 상업적 용도로 쓰는 것을 금했다. 하지만 이 기획안은 그들의 자율적 규제를 자율적으로 깨자는 파격이었다.
이후 페이스북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엄청난 수익도 거뒀다. 그런데 남자는? 쫓겨났다. 화려한 미래그림을 대신 그려줬으나 정작 내부제품 전쟁에서 밀려난 거다. 덕분에 상황은 재미있게 전개됐다. ‘카오스 멍키’의 실체가 드러난 거다. 그것도 내부고발자의 커밍아웃으로. 남자는 자신이 ‘카오스 멍키’였다고 고백한다.
‘카오스 멍키’란 개념부터 짚자. 굳이 풀어내자면 ‘혼돈의 원숭이’ 더 노골적으로는 ‘법석 떠는 원숭이’다. 모든 조직의 핵심이라 할 데이터센터에서 케이블을 뽑고 서버를 부수는 등 난장판을 벌이는 원숭이란 뜻이다. 당장 해커처럼 숨어들어 뒤죽박죽 헤집어대는 원숭이가 떠오를 거다. 그런데 아니다. 의도적으로 심는 원숭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시켜 프로세스를 다운시키고 그런 공격에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소프트웨어인 거다.
뭐 다 좋다. 사실 중요한 건 카오스 멍키가 아니다. 쫓겨난 그 원숭이가 보아하니 다른 국면이 전개되더란 거다. 한없이 ‘쿨’해 보이는 실리콘밸리 내부가 가히 ‘복마전’이더란 것.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되더라고 했다. 관리자는 무능한 데다가 타성·정치로 밥줄을 유지하고 있고, 어두운 뒷모습을 가리는 화려한 단어가 ‘성과주의’더라고 했다. 스타트업? 그조차 ‘남의 돈으로 해보는 사업실험’ 정도로 취급받더란 거다.
▲페이스북 CEO “페이스북 무찌르고 다음은 구글”
페이스북의 경쟁사인 트위터의 고문으로 폴짝 옮겨간 저자의 행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의 마음에 들건 아니건 별 지장은 없다. 저자가 풀어낸 분위기는 되레 적나라해졌으니까. 바로 IT 업계의 전투상황 말이다. 이 선언 먼저 보자. “우리가 페이스북을 무찌를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우릴 그렇게 만들 것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일갈. 과연 이 말이 어디서 나왔겠나. 트위터? 구글? 천만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입을 통해서다.
스스로를 찌를 칼을 뽑고 무기를 개발하고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종국의 목표가 있다. 구글의 침몰이다. ‘저커버그교’의 지령이 그렇단다. “구글은 무조건 무찔러야 한다”고. 변화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혁신조직이 종교적인 믿음으로 뭉친, 그 이중성을 저자는 꼬집어댄다.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왜 그들은 작은 스타트업 인수에 열을 올릴까. 사회서비스? 수익환원? 너무 천진한 판단이다. 기업합병이란 허울로 인재를 독점하기 위해서란다. 인수기업의 DNA와 스타트업 창업자의 대담무쌍한 유전자를 합치려고. 저자의 독설을 그대로 옮기면 유럽산 순종개를 호주의 야생들개와 교배해 똑똑하고 잘 뛰는 목축견을 만들어내는 식이란 거다.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
여기에 결정적 한방도 잊지 않았다. “소시오패스가 돈을 버는 최고의 방법이 뭘까”를 묻곤 “스타트업 창업”이라고 답했다. 어째서?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남을 속이고 착취할 수 있으니까. 운영체계를 만들면서 아이디어를 도용한 빌 게이츠가 그랬고, 프로젝트를 남에게 떠맡긴 뒤 중간에서 보너스를 가로챈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니까. 가장 통이 큰 소시오패스는 저커버그였나 보다. 페이스북이란 아이디어를 만든 이들을 제대로 제끼고 창립자가 된 셈이라니.
▲실리콘밸리의 배신…작동원리의 민낯이란
“이 책을 쓰게 한 모든 적들에게.” 첫 장의 헌사가 이랬다. 작정하고 퍼붓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저자의 대부분 ‘적들’은 페이스북에 속해 있었다. 그만큼 저자에게 페이스북은 ‘착취의 제국’이다. 상징뿐만 아니라 수치까지. 저자가 일하던 시절 페이스북은 이미 사용자 10억명을 찍었다.
잠시 외도를 해도 실리콘밸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건전하고 착실한 스타트업 도전정신? 그딴 건 이미 없다고 했다. 그들의 절박함은 ‘우리는 살아남는다’가 아닌 ‘우리도 언젠가 죽을 수 있다’에 몰려 있으니. 결국 그들의 실질적 모기업이라 할 페이스북·구글·아마존·드롭박스 등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란 논지다. 젠틀하고 스마트한 외형 뒤로 게걸스러운 먹이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물리학박사 출신으로 골드만삭스 퀸트전략가에서 웹프로그램을 짜는 스타트업 창업가로, 또 페이스북 광고팀을 거쳐 트위터 고문까지. 내부고발자로선 손색이 없다. 책은 그래서 상당부분 저자의 경력에 기댄다. 솔깃한 얘깃거리는 물론 그간의 순진한 판단을 반성케 하는 대목까지. 그럼에도 쓸 만한 내용을 건져내는 건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비정한 꼼수가 판치는 배신의 실리콘밸리에 실망해 눈을 감아버리든, 그곳조차 살아남으려 버둥거리는 거친 생태계였단 사실에 측은지심을 발동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