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결혼 8년 차 이영호(38)씨. 오는 3월 말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요즘 한숨이 절로 난다. 미친 듯 가파르게 오르는 서울지역 전셋값을 견디지 못해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왔지만, 이곳 아파트 전셋값도 무서운 기세로 뛰고 있어서다.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로 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씨처럼 전세난을 피해 가까운 경기도로 옮겨 앉는 ‘탈서울’ 행렬이 급증하면서 수도권 전역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74.7%로 사상 처음 지방 전세가율(73.7%)을 뛰어넘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서울·수도권의 경우 집값 상승률에 비해 전셋값 오름폭이 커 지난 10월 전세가율이 사상 처음으로 지방 전세가율을 앞서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2011~2015년) 연평균 169만명(총이동자)이 서울을 떠났다. 이들이 주로 이주한 곳은 가까운 경기도다. 최근 5년 새 평균 35만명이 경기도로 이주했다. 서울을 떠나는 인구의 20.7%에 해당하는 규모다.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서민들은 결국 수도권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 난민들의 탈서울 행렬이 이어지면서 경기도도 지난해 아파트 전셋값이 7.71%나 뛰었다. 반면 지난해 아파트 매맷값은 서울이 5.56%, 경기도가 5.30% 각각 오르는 데 그쳤다.
평균 아파트 전셋값으로 따져보면 서울은 작년 12월 말 현재 3억 7800만원으로, 2년 전인 2013년 말 2억 9368만원과 비교해 8432만원 올랐다. 같은 기간 경기도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억 7632만원에서 2억 2587만원으로 5000만원가량 뛰었다.
그런데 아파트 매맷값은 같은 기간 서울이 4억 8375만원에서 5억 2475만원으로 4100만원 올랐다. 전셋값 상승폭의 절반 수준이다. 경기도는 2억 7129만원에서 2억 9529만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집값에 비해 전셋값이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결국 김씨처럼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옮겨 앉았지만, 이마저도 견디지 못한 서민들은 다시 월세로 내려앉으면서 주거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전세난 지속 전망…재계약 앞둔 서민들 울상
입주 물량이 몰리는 아파트 단지도 입주 초기에는 전셋값이 내림세지만, 입주가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다시 오르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DMC파크뷰자이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입주를 시작한 후 연말까지 전세 물량이 넘치면서 전용면적 84㎡형이 4억원 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4억 5000만~7000만원에 전세 물건이 나오고 있다.
결국 올해 입주 아파트가 지난해보다 5만여 가구 늘어난 27만 가구나 쏟아지겠지만 전세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 팀장은 “입주 아파트라고 해도 월세로 내놓는 물량이 많은데다 새 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전셋값이 높아 전세난을 해결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주택 매매를 포기하고 임차시장에 눌러 앉으려는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도심 역세권 등 임차 수요가 많은 지역의 경우 월세 공급이 늘어도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