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30일에 출간된 청년사 발행본. 가격 2200원. 바스러질 것 같은 종이에 지금의 사치스런 눈으론 차마 볼 수 없는 조판, 페이지마다 올망졸망 달린 각주들까지. 그래도 구성은 대단히 충실하다. 당시 수원대 서양사학과 전임강사로 있던 안병직(78) 서울대 명예교수가 ‘E H 카의 역사관’이란 해설을 붙였다. 이젠 거의 사라진 보론도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타계한 홍치모 전 총신대 명예교수가 쓴 ‘서유럽의 역사연구동향’이다. 역사는 이렇듯 빛바랜 책 위에도 첩첩이 쌓인다.
1961년 영국서 출간된 책은 반세기 동안 한국서 두 차례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1970∼80년대 정말 역사가 뭔지 알고 싶었을 이들과 그것이 못내 못마땅했던 권력자들에 의해 한 번. 지난달 개봉해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둔 영화 ‘변호인’에 의해 또 한 번. 법정에까지 섰던 그 책장 속 내용이 몹시 궁금했던 관객들은 기어이 책을 인문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렸다.
이번 역사교과서 전쟁은 우익 보수세력의 완패로 끝난 모양새다. 그런데 승패보다 더 큰 문제를 끌어냈으니 ‘국정’ 회귀는 물론 정치권 개입의 빌미까지 제공한 거다. 사실 한국현대사는 좌우역사교과서전쟁사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미 60년째다. 1960∼70년대 우편향된 반공교육 일색은 1980∼90년대 역사계 전반에 미친 좌파의 영향력에 눌렸다. 2000년대엔 주고받았다. 2004년 금성출판사 판은 좌편향이라며 보수의 공격을 받았고 최근 교학사에선 전세가 역전됐다. 그런데 이 북새통에서도 빼놓지 않는 게 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이란 것. 그 균형은 정치색도 뛰어넘었다. 좌도 균형이라 하고 우도 균형이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에 대해선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균형이 뭔가. 하나는 분명하다. 좌우의 중간에 걸쳐있는 게 아니란 거다.
카는 자신이 왜 역사가 무엇인지를 말하려는지 공들여 설명했다. 그러곤 이렇게 결론을 낸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관점이고 해석이지만 결코 어느 쪽의 입맛에 맞게 정리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역사란…’이 불온서적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누구는 ‘30년밖에’ 또 누구는 ‘30년이나’라고 한다. 고작 30년에도 극과 극의 시각차는 불가피하다. 이때 필요한 게 상호작용이고 대화다. 균형도 모르고 대화도 없이 역사만 들이댄다? ‘역사교과서 전쟁 100년사’ 정도는 우습게 만들어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