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역사가 무엇이냐고?

  • 등록 2014-01-17 오전 7:08:00

    수정 2014-01-17 오전 7:08: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먼지부터 털어냈다. 서가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고 해도 세월이 씌운 해묵은 때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구입한 날짜를 봤다. 1987년 4월 1일. 놀라지 마시라. 그때만 해도 새로 산 책에 날짜를 기록하는 건 ‘의례’였으니. 책꽂이서 찾아 뽑아내는 데는 꽤나 걸렸다. 지난 시간이 얼만가. E H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다.

1985년 9월 30일에 출간된 청년사 발행본. 가격 2200원. 바스러질 것 같은 종이에 지금의 사치스런 눈으론 차마 볼 수 없는 조판, 페이지마다 올망졸망 달린 각주들까지. 그래도 구성은 대단히 충실하다. 당시 수원대 서양사학과 전임강사로 있던 안병직(78) 서울대 명예교수가 ‘E H 카의 역사관’이란 해설을 붙였다. 이젠 거의 사라진 보론도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타계한 홍치모 전 총신대 명예교수가 쓴 ‘서유럽의 역사연구동향’이다. 역사는 이렇듯 빛바랜 책 위에도 첩첩이 쌓인다.

1961년 영국서 출간된 책은 반세기 동안 한국서 두 차례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1970∼80년대 정말 역사가 뭔지 알고 싶었을 이들과 그것이 못내 못마땅했던 권력자들에 의해 한 번. 지난달 개봉해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둔 영화 ‘변호인’에 의해 또 한 번. 법정에까지 섰던 그 책장 속 내용이 몹시 궁금했던 관객들은 기어이 책을 인문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렸다.

더 흥미로운 건 ‘역사란…’의 의미가 영화서 빠져나와 지금 당장의 현실에도 연결된다는 것. 사실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카의 저술 이후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고? 카로서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당시 이념논쟁이 거의 막을 내렸으니.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5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선 카의 일설이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아직도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으로 전쟁 중이니 말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전쟁은 우익 보수세력의 완패로 끝난 모양새다. 그런데 승패보다 더 큰 문제를 끌어냈으니 ‘국정’ 회귀는 물론 정치권 개입의 빌미까지 제공한 거다. 사실 한국현대사는 좌우역사교과서전쟁사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미 60년째다. 1960∼70년대 우편향된 반공교육 일색은 1980∼90년대 역사계 전반에 미친 좌파의 영향력에 눌렸다. 2000년대엔 주고받았다. 2004년 금성출판사 판은 좌편향이라며 보수의 공격을 받았고 최근 교학사에선 전세가 역전됐다. 그런데 이 북새통에서도 빼놓지 않는 게 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이란 것. 그 균형은 정치색도 뛰어넘었다. 좌도 균형이라 하고 우도 균형이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에 대해선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균형이 뭔가. 하나는 분명하다. 좌우의 중간에 걸쳐있는 게 아니란 거다.

카에게서 역사의 객관성은 균형이 아닌 방향이었다.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라 관점의 객관성, 해석의 객관성이다. ‘사실을 올바르게 수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는 것 말이다. 이는 곧 올바른 의미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카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역사교육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아무도 의미기준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편향됐다고만 지적할 뿐.

카는 자신이 왜 역사가 무엇인지를 말하려는지 공들여 설명했다. 그러곤 이렇게 결론을 낸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관점이고 해석이지만 결코 어느 쪽의 입맛에 맞게 정리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역사란…’이 불온서적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누구는 ‘30년밖에’ 또 누구는 ‘30년이나’라고 한다. 고작 30년에도 극과 극의 시각차는 불가피하다. 이때 필요한 게 상호작용이고 대화다. 균형도 모르고 대화도 없이 역사만 들이댄다? ‘역사교과서 전쟁 100년사’ 정도는 우습게 만들어질 게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추위 속 핸드폰..'손 시려'
  • 김혜수, 방부제 美
  • 쀼~ 어머나!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