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명은 ‘브러시’(2021). 평면인 듯 입체인, 납작한 듯 두툼한 ‘부조 회화’다. 작가의 브랜드가 된 ‘브러시 시리즈’ 중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되는 형체다. 작가 작품의 모든 변화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혼합재료, 110×110㎝(사진=AK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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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실뭉치를 뚝뚝 끊어 축축 겹쳐놓으면 이런 모양일까. ‘공기 반’ ‘색깔 반’이 만드는 입체감이 말이다. 하지만 독특한 이 형체를 만든 건 ‘붓’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붓길’이다. 작가 하명은(41)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이 색판은 붓이란 도구로 의도한 ‘획’과 ‘면’과 ‘층’의 융합체니까.
첫눈에 끌리는 건 단연 색감이다. 알록달록하지만 나름의 질서가 잡힌. 작가 작품의 묘미는 거기에 있다. 강렬하지만 난삽하진 않다는 말이다. 검은 경계선 안에 가둔 색색은 빠짐없이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다.
색에 눈이 적응이 됐다면 다음은 ‘시원시원한 붓자국’ 차례. 물론 굵은 붓을 직접 휘둘러 만들어낸 건 아니다. 붓 가는 길을 단순화한 조각에 아크릴물감을 채색한 뒤, 하나씩 층을 올려 조립하듯 붙여낸다고 했다. 실뭉치 같은 입체감은 이 과정에서 생겼다. 평면인 듯 입체인, 납작한 듯 두툼한 ‘부조 회화’ 말이다. 가끔 그 부조가 튀어나와 ‘완전한 입체’가 되기도 한다. 아트토이 키드로봇 더니에 브러시를 입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더니’를 창조하는 거다.
색판 ‘브러시’(2021)는 바로 그 바탕이다. 특히 작가의 ‘브러시 시리즈’ 중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되는 작품이라 할 터. 최근에는 또 다른 변화가 보인다. 붓의 획에 얇은 은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른바 은지 혹은 박으로 ‘반짝이 효과’를 내는 건데. ‘실버블루 브러시’(2021), ‘오페라실버 브러시’ 등은 그렇게 나왔다.
“매체의 새로운 형식적·담론적 대안을 제시하려 애쓴다”고 작가는 말한다. 회화이나 회화가 아닌, 회화가 가진 한계를 벗겨내겠다는 뜻이다. 경쾌한 표현력 덕에 누구는 ‘팝아트’라고도 하는가 보다. 굳이 안 될 건 없다. 가볍게만 들어올릴 수 없는 묵직한 색판의 의미까지 읽어준다면.
4월 4일까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덕영대로 AK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응시하는 브러시’(Gazing Brush)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갤러리가 진행한 ‘2020 애(愛)경(敬)공모’에 뽑힌 것을 기념한 전시다. 갤러리는 “동시대에 사랑과 존경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하명은 ‘실버블루 브러시’(2021), 혼합재료, 72×72㎝(사진=AK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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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명은 ‘오페라실버 브러시’(2021), 혼합재료, 72×72㎝(사진=AK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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