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공급대책]꽉 막힌 재건축…"2~3년 후 서울 집값 불안"

집값 과열 주범 지목해 기준 강화
서울 신규주택 80% 정비사업 의존
공급 가뭄 부메랑 우려
  • 등록 2019-05-20 오전 5:30:03

    수정 2019-05-20 오전 5:30:03

2003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온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신동아 아파트 전경(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재건축 조합원 주택 공급 수 제한(2017년 6월)→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2017년 8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2018년 1월)→ 안전진단 강화(2018년 2월)→ 정비계획 공공 가이드라인 적용(2019년 3월)→ 재개발 임대주택 비율 최대 30% 상향(2019년 하반기 시행 예정)’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동안 재건축·재개발(정비사업) 시장에 쏟아진 주요 규제다. 정부는 서울 집값 과열 현상이 나타난 주범으로 정비사업지를 지목하고, 매년 두 개 꼴로 굵직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집값이 잡히지 않자 결국 3기 신도시를 포함해 수도권 30만 가구 주택 공급 대책을 3차에 걸쳐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공급 물량의 80% 이상이 인천과 수도권 서부권에 분포한데다 그나마 있는 서울 물량의 절반 이상은 준주거·상업지 용적률을 한시적으로 완화해 공급한다는 계획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서울 신규 주택 공급의 80% 이상을 재건축·재개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를 묶어놓고는 장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을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값 하락 전환… 임대비율 확대에 재개발 ‘좌초’

주택 지을 택지(땅) 자체가 부족한 서울에선 12만 가구(재건축 7만4570가구·재개발 5만460가구)가 넘는 정비사업이 막히면 사실상 이 물량을 대체할 만한 공급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연이은 정비사업 옥죄기로 재건축 단지가 몰린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강북 지역 주요 재개발 사업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지난해 부활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강화 시행 조치 이후 재건축 시장은 한껏 움츠러든 모습이다.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가 지난해 단 한 곳도 없었다. 최근 서초구 방배동 삼호아파트 D등급(조건부 재건축) 판정이 안전진단 강화 이후 처음이다.

최근 정부가 재개발 사업 임대주택 의무 비율을 최대 30%로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부 재개발 사업장도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서울의 경우 아직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못한 한남뉴타운 2·4·5구역, 성동구 성수전략 1·2지구, 송파구 마천 1·4구역 등 30곳이 넘는 재개발 구역이 새 규정을 적용받을 전망이다. 서울 A재개발 사업장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각종 규제로 인허가 절차가 늦어지면서 사업성이 악화됐는데 임대주택 비중까지 늘리라고 강요하는 건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라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업을 아예 접자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일감이 없어지자 건설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에는 정비사업 물량이 많지 않아 과거 중소건설사가 집중하던 지방 주택시장에 대형건설사도 앞다퉈 진출하며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건설사 정비사업부 상무는 “사업승인인가, 시공사선정, 이주·철거 등을 완료하려면 최소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데 서울에서는 공급 물량이 확 줄어들어 일감이 거의 없다”며 “(정비사업 수주가)갈수록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지연은 주택 공급 부족을 불러와 중장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인허가 물량은 55만4136가구로 전년(65만3441가구)에 비해 15.2% 감소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인허가 이후 착공까지는 빠르면 6개월, 준공까지는 3년 정도 걸린다고 보면, 2020년께부터는 서울 새 아파트 입주가 크게 줄어 집값이 오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일몰제·서울시 심의 지연 등 걸림돌 “규제 완화가 해답”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도 여전히 문제다.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시행사이자 당사자인데도 정작 서울시의 심의에 가로막혀 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와 은마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들 단지 주민들은 최근 서울시청에 앞에서 연이어 대규모 집회를 열어 “부동산시장 과열을 이유로 서울시가 정비계획 심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주택 수급 불안이 나타날 수 있는 요인은 또 있다.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정비구역 일몰제다. 이 제도에 따라 내년 3월까지 조합을 설립하지 않으면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는 곳이 재개발 사업장 38곳에 이른다. 서울시는 해당 규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일몰제 회피가 가능한 단지에 대해서도 해당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마디로 재개발 사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10년이 넘도록 조합이 설립되지 않아 주민들 피해가 우려되므로 국토부에 일몰제 대상을 늘리자고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3기 신도시 발표 과정에서 밝힌 서울의 주택 공급 방안도 주먹구구라는 평가가 많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중소규모 택지 개발지를 보면 억지로 쥐어짠 느낌이 든다”며 “민간이 주된 공급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리스크도 많고 인센티브가 없어 사업에 나설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에서 중·소규모 택지를 개발한다고 해도 도시계획과 경관상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색내기용 밖에 안된다”며 “일시적으로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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