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예산심의가 민생이다[안종범의 나라살림]

  • 등록 2024-08-29 오전 5:00:00

    수정 2024-08-29 오전 5:00:00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정부가 편성한 2025년 예산안이 국회로 갔다. 677조4000억원 규모로 관리재정수지가 오랜만에 3%대 아래인 2.9% 적자로 떨어졌고, 급격히 증가하던 국가채무도 윤석렬 정부 들어서서 안정세를 보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48.3%로 제출됐다. 이제 곧 22대 국회 첫 예산심의가 시작될 것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로 구성되는 50명의 국회의원이 9월부터 법정 예산안 통과 시한인 12월 2일까지 3개월간 이 예산안을 심의하도록 돼 있다. 정부가
장장 9개월에 걸쳐 수많은 전문 인력을 동원해서 만든 예산안을 국회에서는 길어야 두 달 동안 50명의 예결위원이 심의한다.(9월 한 달은 2023년도 결산을 하게 돼 있다.)

과연 22대 국회 새내기 의원들이 잘해낼 수 있을까? 21대 국회 때까지 예결위가 보여준 관행과 습성을 보면, 정치 공방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법정 시한 임박해서 자신들 지역구 예산 챙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다 법정 시한을 넘겨 간신히 통과시킬 게 뻔하다.

그런데 이런 걸 늘 보아온 우리 국민도 이제는 무뎌지고 무관심하다. 예결위 회의 때 여야 의원 모두 결산심사나 예산심의 관련 발언과 질의를 하는 데는 30%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쓴다.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대부분 정치 현안을 놓고 싸우고 또 싸운다. 예산이나 결산과 무관한 엉뚱한 폭로성, 비난성, 자극적 발언으로 예결위 장을 메우고, 부족하면 본회의장으로 옮겨서 계속하기도 한다. 위원장도 이를 제지하거나 예결산 관련 발언이나 질의를 하라고 환기하지 않는다. 언론도 이를 방치할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서 이런 공방을 앞다투어 보도한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있는 예산 발언은 보도도 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번 22대 국회는 달라지기를 기대하면서 몇 가지 주문을 해본다. 첫째, 전년 대비 예산 증가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가면 이 예산안의 전년 대비 증가율이 내년도 성장률 예측에 비해 큰지 작은지 갖고 논란이 벌어지곤 했다. 성장률보다 예산 증가율이 높으면 팽창예산이고 아니면 긴축예산이라고 하면서 공방을 벌였다. 그래서 과거에는 성장률 예측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책정되었고 또 이를 기준으로 예산 증가율이 너무 크기에 선심성 예산을 푼다면서 야권은 정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지금은 여야 모두 선심성, 나아가 포퓰리즘에 매몰돼 예산 증가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환영하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전년 대비 증가율을 기준으로 예산안을 평가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데 있다. 증가율 갖고 벌이는 공방은 그다음 해 가서 추경이 편성되고 나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26년간 5년을 제외하고 매년 여러 가지 이유로 추경이 편성되었다. 국가재정법상 추경의 편성 요건이 아닌 평상시에도 이뤄진 추경으로 전년도 예산심의 때 증가율을 놓고 벌인 공방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매년 재연됐다.

두 번째 과제는 9월 한 달간 이뤄지는 결산심사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전체 예산 증가율과 함께 각 예산 항목들도 전년 대비 증가율에 모든 의원의 관심이 집중되는데 이때 결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한번 시작된 예산은 원래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지를 검증하는 결산 심사과정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다음 해는 전년 대비 얼마나 증가하는가에만 예산심의의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래서 한번 시작된 예산은 결코 멈춰지는 일이 없이 앞으로 더욱 늘어가는 일만 남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9월에 이뤄지는 2023년 예산의 결산심사를 철저히 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이 예산 항목의 전년 대비 증가율이 아니라 감액하거나 항목 자체를 없애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다부처 예산 사업의 경우 중복과 사각지대 그리고 실효성 분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저출산, 중소기업 등의 분야는 여러 부처에 걸쳐 사업이 시행되고 나아가 예산안이 마련되는데 이들에 대해 통합적으로 사전 및 사후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넷째, 조세지출과 재정지출을 동시에 보는 예산심의와 결산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지원을 하는 정책 수단은 크게 세금을 감면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조세감면 즉 조세지출로, 후자는 재정지출로 이뤄지는데 이에 대한 효과는 대상별로, 상황별로 다를 것이다. 따라서 조세지출과 재정지출의 효과를 심층적으로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사후 평가를 기초로 예산안도 조세지출과 재정지출을 통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국가재정법을 기초로 중장기적 계획하에 예산안을 만들고 평가해야 한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산안을 제출할 때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함께 제출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심의하면서 이러한 중기 재정계획에 관한 관심은 거의 없고 논의도 이뤄지지 않는다. 내년도 예산안이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비추어 볼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의원은 거의 없다. 나아가 국가재정법에는 재정지출의 중장기계획 이외에 2015년부터는 중장기 조세정책기본계획도 제출하게 돼있다. 그런데 아직 이러한 중장기 조세정책을 기초로 예산안 심의가 이뤄지는 것은 더더욱 사례가 없다.

여섯째, 신규 사업의 경우 보다 철저히 과학적인 사전평가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500억원 이상 신규사업에 대해 이뤄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때가 되기도 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 기초가 되는 비용편익분석의 활용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분석기법의 과학화와 분석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베이스(DB) 확충 등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신규 사업의 경우 이뤄지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고용영향평가도 개선하고 나아가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출산 영향평가를 포함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국회에서 이 모든 과제를 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러나 제16대 국회부터는 예결위가 상설화돼 1년 내내 열릴 수 있도록 했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긴 안목을 갖고 국민적 관심하에서 국회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챙기도록 일 년 내내 심사하고 감독해야 한다. 나아가 예결위의 상임위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22대 국회의 진정한 민생 챙기기는 이번 예산심의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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