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달부터 능숙했던 오세훈…변화 보다 안정, 원칙 아닌 실용 택했다

10년만에 친정 복귀한 오세훈 서울시장
효과적 방역 위해 중앙정부와 적극 소통
주택 안정화 속 변화 추진…안전진단 완화
전임시장 정책 발전적 계승…피해자 첫 사과도
  • 등록 2021-05-07 오전 5:50:00

    수정 2021-05-07 오전 5:50:00

오세훈 서울시장.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다시 뛰는 서울시, 바로 서는 대한민국’

10년 만에 서울시로 돌아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첫날,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해 남긴 글귀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투표 부결로 자진 사퇴했던 오 시장은 길었던 공백만큼 원숙하고 세련된 정책을 펼치며 취임 한달 간 숨가쁜 행보를 보였다.

‘첫날부터 능숙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만큼 취임 직후부터 국정 최대 현안인 방역과 부동산 대책, 복지 정책 등에 소신있고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며 전과 180도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장기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전임 시장의 정책을 무조건 지우기보다는 조직 안정, 중앙정부와의 협조 등을 통해 실용주의적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짧은 임기 동안 정책 추진동력이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있는데다 중앙정부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엇박자 우려가 점차 높아지는 점은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정 속 변화 추진…‘서울형 방역’ 도입할 듯

오 시장이 주재해 서울시 간부들과 가진 첫 회의에서 ‘서울형 상생방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난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정부의 일률적 규제가 아닌 업종별로 차별화된 영업시간 제한, 신속한 검사가 가능한 자가검사키트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다만 제도 시행은 ‘중앙정부와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방역상황이 엄중한 만큼 서울시는 즉각 대응했다. 확진자 발생 시 추가 확산 가능성이 높은 콜센터, 물류센터, 학교 등에서 자가검사키트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 키트를 확인하면 의료진이 아닌 일반시민도 코 안쪽 깊숙이 검체를 채취할 경우 바로 확진 여부를 판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존 유전자증폭(PCR) 검사에 비해 정확도는 떨어져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또 정부와 협의해 업종별로 영업시간을 달리하는 서울형 거리두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오 시장이 첫 회의에서 지적한 공공의료 부족 문제는 발언 후 일주일도 안 돼 채용 절차 개선, 보수 현실화라는 해법을 도출하기도 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새로운 거리두기는 동일 생활권인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해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며, 당사자인 업계 관계자들과도 지속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며 “단순히 정치적인 이슈로 묻히지 않고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기 위해 물밑에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난관으로 예상됐던 서울시의회와도 특유의 소통능력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 서울시의회는 전체 109석 중 101석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 야당 출신인 오 시장이 정책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수차례 김인호 서울시의회의장을 면담하는 등 대립이 아닌 협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시의회는 보궐선거기간 공언했던 오 시장의 내곡동 땅 의혹 조사를 보류하고, 취임 직후 열린 시정질문도 전격적으로 취소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 시장은 본인의 아킬레스건으로 거론됐던 무상급식 이슈와 관련해선 유치원·어린이집 무상급식 전면 도입을 추진하며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정책 스탠스를 선보였다.

지난달 22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온라인 취임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공)
◇부동산 불만 대변하는 사이다 행보…추진동력 상실 관건

현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인 주택시장 안정화 문제에도 오 시장은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신중하지만 신속하게’라는 모토로 부동산 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오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재건축 첫 단계인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가 필요하다. 절박하게 재건축을 필요로 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방문해 달라”고 건의했다. 또 전국 5개 시·도지사들과 연합해 급격한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재산세 부담을 완화하고, 지자체가 공시가 산정 권한을 갖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 기대감에 주택시장이 들썩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압구정·여의도·성수·목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빠른 주택 공급 못지않게 과열된 주택시장을 안정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격 담합 등 시장 불안 요인을 수시로 모니터링해 단지별로 정비사업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 시장이 당선 확정 직후 언급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임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였다, 그는 “서울시의 책임자로서 시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며 해당 피해자와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하고 포용을 통해 조직안정을 모색한 셈이다.

실제 오 시장 부임 후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재 서울시 1급 공무원 7명 중 사퇴한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선거 기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약속한 ‘서울시 공동운영’을 지키기 위해 김도식 국민의당 대표 비서실장을 정부무시장으로 내정한 것 외에는 본인의 캠프 사람을 아직 시로 불러들이지도 않았다. 또 전임 시장의 시정 철학으로 만들어진 서울민주주의위원회와 서울혁신기획관은 시민협력국으로 통합해 유지하고 남북교류협력단, 청년청 등도 존치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광화문광장 조성 사례에서 보듯 행정의 연속성과 발전적인 정책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오 시장이 소신에 따라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실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 “다만 내년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이 상실될 지가 최대 변수”라고 말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정권 심판과 시장 교체라는 의미를 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오 시장이 본인이 해야 하는 당위와 구조적으로 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급진적 변화 보다는 안정적 변화를 모색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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