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증세 없는 복지'와 '소득주도 성장'

  • 등록 2018-08-16 오전 5:00:00

    수정 2018-08-16 오전 5:00:00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으로 집권 내내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 20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을 이어 받았고 경기 상황도 좋지 않아 취임 초 약속
했던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상위 30%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받았고,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14년 9월에는 담뱃세 인상으로 ‘꼼수 증세’라는 비판에도 시달렸다.

2014년 가을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둘러싼 지자체와의 갈등도 악재였다. 2015년 초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다. 앞서 2013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공제 혜택이 줄어들면서 실질적인 세 부담이 늘어났는데,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소급 적용이라는 최악의 대응을 했고, 건강보험료 개혁도 스스로 거둬들이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이하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으로 증세를 했다.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로 대기업의 실효세율을 2%포인트 이상 끌어 올리고 담뱃세도 인상하면서 박 전 대통령 임기 중 조세 부담률은 2%포인트 올랐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약속을 굳건히 지키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로부터 받은 60조원의 초과 세수라는 ‘선물’을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마중물로 잘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는 필요한데, 세목을 늘리거나 세율 변경이 없으면 증세가 아니라는 고집을 피우면서 ‘증세 없는 복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정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집권 1년 경제 성적표는 참담하다. 세계 경제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세계 평균치를 밑돌았고, 정부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 밑으로 낮추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에는 역전될 전망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있으나 취업자 증가는 20만 명 밑으로 떨어져 최악의 청년 실업난은 지속되고 있다.

대기업이 잔뜩 움츠려 있으니 대기업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소상공인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을 한다고 하고 서민들은 물가가 너무 올라 외식하기조차 겁이 난다.

경제 현장 실패로 인해 ‘J 노믹스’의 기조를 수정하고 시장 친화적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지만 핵심 지지층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좌클릭’ ‘우클릭’을 고민하기보다 자신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황을 보는 결단을 해야 한다.

연봉 4000만원 가까운 고졸 신입사원 급여를 2년간 30% 가까이 강제적으로 올리고 세금으로 영세기업의 임금 인상분을 보존해 주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후유증은 내년에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올해 말까지의 계도 기간 중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기 소르망이 우려한 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경쟁력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결과가 올 수 있다.

대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래 전망이 불확실하니 기업들은 사내유보금만 쌓아 놓고 투자를 하지 않아 기대하던 ‘낙수 효과’가 없었듯, 소득주도 성장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고령화로 가계 소비의 주체가 된 노년층이 1인당 평균 1억 원이라는 저축액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갑을 닫아버렸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아베 정부 이전에는 일본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소비 진작을 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가계가 성장의 주체일 수는 없다.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면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편을 가르기보다 부자와 서민, 가계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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