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화석연료는 지금보다 풍족했다.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굳이 전기로 왔다 갔다 하는 차가 필요치 않았던 거다. 결정적으로는 배터리.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42㎞에 불과했다. 양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의 휴대폰 배터리 수백개를 매달고 다니는 것 같았으니. 결국 얼마 뒤 인류 최초의 전기차 회사는 폐업신고를 하고 만다.
그후에 엘론 머스크란 인물이 등장했다. 테슬라의 CEO 자리에 오르며 “기존의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곤 ‘기존’의 전기차를 ‘더 좋게’ 뚝딱뚝딱 다듬어 세상에 내놨다. 다 차려진 밥상에 ‘배터리기술’이란 숟가락을 얹은 셈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긴 했지만.
전기차가 그랬듯 전자담배도 ‘한 번 망한’ 상품이다. 1965년 미국인 허버트 길버트가 처음 시판한 발명품. 그런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당시는 흡연권장시대가 아니었나. 담배회사의 광고 공세를 못 당해냈던 거다. 2003년 중국인 약사 한리가 특허를 내 다시 불을 댕긴 전자담배는 ‘신상’이 아니었던 거다. 금연바람 덕을 봤다지만 흡연인 듯 금연인 듯 헷갈리는 콘셉트가 뒤늦게 먹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때 만난 아이디어’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특히 예전에 ‘가짜’ ‘엉터리’ ‘헛소리’ 등으로 폄하했던 것들에 애정을 기울였다. 한때 비웃음을 당하고 ‘뻘짓’ 취급을 받았던 주장·발견이 어느 순간 타당성을 인정받는 건 물론 혁신으로 추앙받았다고 역설했다. 굳이 과학·기술에만 한정할 일도 아니다. 비즈니스·역사·문화·의학·군사·철학·심리학 등에서 복원한 ‘알고 보니 진국’인 사례가 넘쳐난다고 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있다? 없다?
그래도 태양 아래 진짜 새로운 게 나오기도 한다. 시계·나침반·망원경·뉴턴의 중력이론 등이 그런 거 아닌가. 하지만 저자가 볼 때 과학의 책무이자 영광은 ‘상식을 거스르는 행위’다. 예를 들어 여기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순도 100%의 진리란 게 있다. 어떤 물체든 희미한 패턴을 이룬 원자로 구성돼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뱅뱅 돈다 등. 하지만 세상에는 단 한 번만 일어났던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늘에 빛이 번쩍한다든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든가 하는. 물론 다시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건 맞는가. 이미 일어났는데. 일어났을 가능성은 100%인데.
‘사촌이 산 땅’이라 배가 좀 아프긴 할 테지만 ‘베스트셀러는 좋은 운을 타고난 우연한 상품’ ‘상관관계 같은 건 원래 없더라’는 식으로 여기는 게 속은 편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 속 편한 생각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핫트렌드라고 하는 것도 사실 어떤 맥락에서 재발견하고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과거 어떤 특정한 시대적 마인드와 조화를 이루면서 대유행을 만들어낸 것뿐이라고.
▲네 헛소리가 혁명이었어
종횡무진 헤집은 ‘구식’ 아이디어에는 고전도 빠지지 않는다. 기원전 500년대 중국 고대국가인 오나라에 살았던 손자가 쓴 ‘손자병법’이 대표적. 숨겨둔 전술을 휘둘러 드라마틱하게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란 ‘싸움의 한 수’는 이후 2300년이 지난 1980년대 냉전기류를 탄 서구에서 적극 권장했다. 당시 정치가 개인의 책략을 칭송하는 분위기였던 덕분이다. “모든 전투는 싸우기도 전에 승패가 결정 나지.” 영화 ‘월스트리트’에도 나온 이 대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계적인 패권다툼이 벌어지는 은밀한 세계에서 손자병법은 ‘첩보활동의 지침서’가 됐다.
아이디어는 어떤 핀으로도 고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지금 떠들어대는 누군가의 헛소리가 미래의 혁명이 될 수 있단 것만 알아두란 말이다.
▲“일단 물러서면 더 멀리 뛸 수 있다”
역사는 무질서하다. 규칙도 없다. 대체로 어수선하다. 그런 와중에 몇몇 천재가 나타나 인류를 구했다. 멸망할 판국에 도약이니 진화니 하는 그물망을 던져 세상을 끄집어 올린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몇몇 천재뿐인가. 저자가 눈여겨본 건 그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기타 등등의 어정쩡한’ 사람·기술·사상이다. 때론 미개하다고, 때론 뭐 그런 게 다 있느냐고 무시했던 것들이 적절한 시기를 타고 나와 ‘공동진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늘 아이디어를 좇고 있나. 그렇다면 ‘절대 믿음’은 버려야 한다. 아이디어는 움직이는 표적과 같단다. 직선으로 행진하면 그나마 나을 건데 이리저리 몸부림까지 친다. 그 동요를 잡아내는 것이 바로 리싱크(rethink)란다. 다시 고려하고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것 말이다.
무기를 들었다면 다음 단계는 전진일 터. 저자는 “일단 물러서면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했다. 맞다.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으로는 절대 보폭을 늘릴 수 없을 거다. 뒤돌아보면 두 가지는 얻는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퍼즐조각과 찾지도 않은 퍼즐조각. 어찌 맞출 건가는 ‘뻘짓’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