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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기업 홍보실 언론담당 C부장은 10월에 출입기자와 식사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다. 3만원 이하 식사 접대는 가능하지만 식사하면서 기사를 청탁하면 위법이라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사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식사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존에 사회상규로 여겼던 홍보활동이 김영란법 시행으로 자칫 범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에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28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기업들은 대관·영업·영업 담당자를 중심으로 위법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들 내부단속에 나서고 있다. 특히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첫 사례로 적발돼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동안 관례로 해오던 대외활동은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임직원 교육 강화.. 법 테두리내 행동 지시
기업들은 그동안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토대로 법무팀과 협의를 통해 위법사항을 체크하고 임직원들을 상대로 내부교육과 김영란법 관련서약도 받았다. 종업원이 법을 위반한 경우 기업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기업이 양벌규정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사규·가이드라인 정비 △직원 교육 △준법서약서 의무화 △모니터링 시스템 마련 등의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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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외부 활동을 급격하게 줄이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내려오진 않았지만 법이 규정한 테두리 내에서 행동할 것을 지시 받았다”고 전했다. 공기업에 자재를 납품하는 기업들의 영업직원들도 김영란법 시행 이후 거래담당자와 접촉방법에 고심하고 있다.
신제품 홍보행사 로펌 컨설팅 받으며 준비
언론을 상대로 신제품 출시에 대한 마케팅·홍보 활동이 많았던 전자·자동차·유통업계는 28일 이후 행사계획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가피하게 10월에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기업의 경우 로펌 등과 법에 저촉될 사안이 있는 지를 상담하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시승이나 신차출시는 직무와 관련된 취재로 기자 초청이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행사에 동반돼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이 통상범위에 해당하는 지가 모호해 당분간은 마케팅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자·자동차업체들은 기자들을 상대로 한 체험기나 시승 등의 홍보활동이 위축되자 블로거나 동호회를 통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여전히 법규정 애매모호.. 자칫하단 ‘범법자’ 조심조심
기업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몰라서 법을 위반하거나 적법인데도 몰라서 기업활동을 포기할 소지가 높은 사안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상식적 수준의 기업활동만으로도 범법자가 되지 않을까 난감하다는 하소연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예컨대 기업마다 교수를 사외이사로 위촉하고, 사외이사 업무수행에 대한 댓가차원에서 회의참석 수당을 제공하고, 임원급 예우 차원에서 골프, 휴양시설 편의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김영란법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권익위와 법조계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권익위는 기업의 내규보다는 공직자 등에 대한 김영란법이 우선 적용돼야 하므로 기준 이상의 수당이나 편의제공은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법조계는 교수 신분이 아니라 사외이사직 신분에서 활동하는 댓가에 대해서까지 김영란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교수로서 강연시에는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은 이견이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기업들이 교수를 사내교육 강사로 초청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최근 식대가 초과될 경우 5만원짜리 식사권을 선물하거나 참석인원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3만원인 식사제공 한도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가 묘책인 것처럼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 적법한 것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면서 “법을 회피하려 하기 보다는 기업관행 선진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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