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2. 어나니머스.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행동을 취한다’는 기치를 내건 해커들의 느슨한 국제연합체. 이들은 지난달 2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이버테러를 가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비밀집단 혹은 개인은 무장한 기술력으로 국가의 절대권력을 수시로 위협한다.
모두는 소소한 다윗이다. 그런데 골리앗이 쌓은 거대 권력의 붕괴를 이 소소한 다윗들이 예고한다. 거대 권력은 전통적 중앙집권식 국가모델의 전부로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 무력단체, 정당, 정부, 지성인집단 등등. 그 끝을 예견한 이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IT 미래학자인 저자다. 출발은 인터넷의 출현을 보면서였다. 다윗을 새로운 골리앗으로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디지털혁명에 허물어지는 거대 권력
디지털에 의해 뒤바뀐 세상. 저자는 그 혁명 끝에 언론·정치·군대·시장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뒤바뀐 디지털시대를 들여다봤다. 초점을 맞춘 건 권력의 속성이다. 그중에서도 다윗의 변신에 주목했다. 한마디로 거대 권력이 혁신적 기술에 의해 무너지면서 드러나게 될 부작용을 걱정한 것이다. 그 구석구석을 짚기 위해 꺼낸 개념은 ‘급진적 연결성’. 방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어디로든 즉각 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 속성이 거대 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동시에 기존체제에서 벗어나 있는 신흥세력에게 힘을 싣기 시작했다는 거다.
다만 거대 기업의 종말에는 유보를 뒀다. 초기 단계란 뜻이다. 하지만 서서히 하락세로 접어들 거란 예견은 거두지 않았다. 진행 방향은 두 가지다. 작은 기업이 늘면서 규제를 통한 품질이나 안정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고, 재산권 침해가 더 빈번해질 수 있다.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그렇다면 기술만큼은 중립적이지 않을까. 보통의 상식에 저자는 반기를 든다. “기술에는 마음이 없다”는 거다. 중립은커녕 경향성까지 갖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애플의 예를 보자.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숭배한다. 그래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소비에 열광적이다. 상품을 구매했으니 이걸로 끝인가. 아니 진행 중이다. 제품에 반영된 잡스의 시각이 세상을 철저히 재편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골리앗 시대를 맞은 다윗의 자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변신을 하면 된다. 언론의 경우 전통적인 규범에 바탕을 두면서 디지털기술의 힘을 활용한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가디언’이 시도한 ‘크라우드 소싱’. 일반인들의 노동력·콘텐츠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시도로 2009년 가디언은 200만쪽이 넘는 의원 경비지출보고서 검토에 네티즌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결과는 단 80시간 만에 전체의 약 20% 분석으로 나타났다. ‘허핑턴 포스트’의 ‘오프 더 버스’ 프로젝트도 있다. 2008년 1만 2000명의 일반 시민기자가 나서 대통령 선거소식을 전한 ‘프로와 아마추어 연계’다.
보수적인 맥락도 없지 않다. 이런 거다. 거대 언론에 필적할 아마존, 유튜브, 아이튠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해 창작활동이 활발해진 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많은 자본의 투입이 필수적인 고품질 문화콘텐츠가 감소하는 걸 반길 순 없다는 거다.
알아챘겠지만 저자의 논지에 디지털이 채색한 장밋빛은 없다. 되레 그의 우려 절반 이상은 새로운 변화에 무너져가는 기존 가치에 얹혀 있다. 어떤 첨단기술이라도 거대 권력을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인간 존엄을 짓밟지 않는 도덕적인 기술사용도 권한다. 혁신에 푹 빠져 절대가치를 놓치면서까지 새로운 골리앗이 돼 가는 다윗들에 대한 경고이자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