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클릭 몇번이면 '골리앗' 무너진다

SNS·스마트기기로 연결된 개인들
언론·정부 등 전통권력 흔들어
고품질 문화콘텐츠 감소 우려
규범·기술 접목한 신언론 필요
……………………………………
거대 권력의 종말
니코 멜레|368쪽|알에이치코리아
  • 등록 2013-07-04 오전 7:10:00

    수정 2013-07-04 오전 7:10:00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다윗 1. 블로거. 월스트리트에 몸담고 있는 수전 웨버는 블로그 ‘벌거벗은 자본주의’를 운영한다. 금융·컨설팅 분야서 대단한 경력을 쌓은 그는 주요 언론이 금융위기의 조짐을 눈치 채기도 전인 2007년 ‘종말의 시작인가’라는 글을 올려 반향을 일으켰다. 웨버의 블로그만이 아니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는 이제 주류 언론의 빈자리를 헤집으며 새로운 저널리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윗 2. 어나니머스.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행동을 취한다’는 기치를 내건 해커들의 느슨한 국제연합체. 이들은 지난달 2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이버테러를 가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비밀집단 혹은 개인은 무장한 기술력으로 국가의 절대권력을 수시로 위협한다.

모두는 소소한 다윗이다. 그런데 골리앗이 쌓은 거대 권력의 붕괴를 이 소소한 다윗들이 예고한다. 거대 권력은 전통적 중앙집권식 국가모델의 전부로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 무력단체, 정당, 정부, 지성인집단 등등. 그 끝을 예견한 이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IT 미래학자인 저자다. 출발은 인터넷의 출현을 보면서였다. 다윗을 새로운 골리앗으로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디지털혁명에 허물어지는 거대 권력

디지털에 의해 뒤바뀐 세상. 저자는 그 혁명 끝에 언론·정치·군대·시장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뒤바뀐 디지털시대를 들여다봤다. 초점을 맞춘 건 권력의 속성이다. 그중에서도 다윗의 변신에 주목했다. 한마디로 거대 권력이 혁신적 기술에 의해 무너지면서 드러나게 될 부작용을 걱정한 것이다. 그 구석구석을 짚기 위해 꺼낸 개념은 ‘급진적 연결성’. 방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어디로든 즉각 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 속성이 거대 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동시에 기존체제에서 벗어나 있는 신흥세력에게 힘을 싣기 시작했다는 거다.

위협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으로 언론을 꼽았다. 다양한 SNS와 스마트 기기들에 잠식당하는 중이기 때문. 흔히 말하는 ‘언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저자의 판단은 끈질긴 노력과 비용이 드는 탐사보도, 또 이를 통한 권력 견제가 힘들 거란 진단에 있다. 어나니머스 같은 협박도 수없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경계가 희미해지는 디지털시대에는 명확한 리더십도, 체계도, 특정한 거점도 없는 집단들의 출현이 비일비재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니 물리적인 국가안보만 보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다만 거대 기업의 종말에는 유보를 뒀다. 초기 단계란 뜻이다. 하지만 서서히 하락세로 접어들 거란 예견은 거두지 않았다. 진행 방향은 두 가지다. 작은 기업이 늘면서 규제를 통한 품질이나 안정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고, 재산권 침해가 더 빈번해질 수 있다.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그렇다면 기술만큼은 중립적이지 않을까. 보통의 상식에 저자는 반기를 든다. “기술에는 마음이 없다”는 거다. 중립은커녕 경향성까지 갖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애플의 예를 보자.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숭배한다. 그래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소비에 열광적이다. 상품을 구매했으니 이걸로 끝인가. 아니 진행 중이다. 제품에 반영된 잡스의 시각이 세상을 철저히 재편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술은 그 자체로 특정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용자는 디지털 소통 기기가 주는 재미와 편의에 빠져 별생각 없이 그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게다가 갈수록 더 작고 빠르고 저렴한 제품을 추구하는 기술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분리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새로운 골리앗 시대를 맞은 다윗의 자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변신을 하면 된다. 언론의 경우 전통적인 규범에 바탕을 두면서 디지털기술의 힘을 활용한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가디언’이 시도한 ‘크라우드 소싱’. 일반인들의 노동력·콘텐츠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시도로 2009년 가디언은 200만쪽이 넘는 의원 경비지출보고서 검토에 네티즌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결과는 단 80시간 만에 전체의 약 20% 분석으로 나타났다. ‘허핑턴 포스트’의 ‘오프 더 버스’ 프로젝트도 있다. 2008년 1만 2000명의 일반 시민기자가 나서 대통령 선거소식을 전한 ‘프로와 아마추어 연계’다.

보수적인 맥락도 없지 않다. 이런 거다. 거대 언론에 필적할 아마존, 유튜브, 아이튠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해 창작활동이 활발해진 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많은 자본의 투입이 필수적인 고품질 문화콘텐츠가 감소하는 걸 반길 순 없다는 거다.

알아챘겠지만 저자의 논지에 디지털이 채색한 장밋빛은 없다. 되레 그의 우려 절반 이상은 새로운 변화에 무너져가는 기존 가치에 얹혀 있다. 어떤 첨단기술이라도 거대 권력을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인간 존엄을 짓밟지 않는 도덕적인 기술사용도 권한다. 혁신에 푹 빠져 절대가치를 놓치면서까지 새로운 골리앗이 돼 가는 다윗들에 대한 경고이자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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