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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출간된 에세이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어떤책)의 저자 서영길(58)씨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서씨는 25년간 택배 일을 하며 겪은 희로애락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책으로 펴냈다. 서씨의 ‘큰딸’(35)은 몇 권이나 되는 아빠의 메모를 보고, 책으로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2. “우리 열차에서는 현재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동시에 접수되고 있습니다. 저도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요.”
지난 4월 나온 책 ‘고민과 걱정은 열차에 놓고 내리세요’(북센스)에는 이같은 지하철 풍광과 익숙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5년째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를 운행하는 양원석(28) 기관사는 직접 쓴 안내방송 멘트와 기관사의 일상을 담아 에세이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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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가에선 직업 에세이가 꾸준히 읽힌다. 3~4년 전부터는 돈과 권력이 보장되지 않아도 애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기꺼이 구매해 읽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자기계발서를 벗어나 ‘사람 이야기’가 중심이다. 의사·교수·변호사 등 전문직에 쏠렸던 직업군도 다양해진 게 특징이다.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업세이(직업+에세이)의 잇단 출간은 타인의 삶을 폭넓게 이해하는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담겨있다. 택배기사 서씨의 큰딸은 “아무리 봐도 우리 아빠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아빠의 메모나 이야기를 듣고 제가 적은 글을 다시 아버지가 검증하면서 책을 써내려 갔다”고 했다.
“내가 갑인데 왜 택배기사가 갑 노릇을 하죠?”라며 막말하는 고객을 만나면 “상생 관계”라고 고쳐 말해보지만 서글펐다. 택배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거나, 술에 취해 우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다. 서씨는 택배 일을 마치면 매일 펜을 들었다.
“기록을 해두면 확실히 실수할 일이 적어져요. 마음관리도 되고요. 화가 났다가도 글을 쓰다 보면 차분해지더라고요.” 책은 서씨의 일상을 56개의 글로 담아 그냥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울림이 크다. 일과 직업을 대하는 서씨의 자세와 “그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하는 여유와 위트는 낡은 사고방식을 깨고, 독자를 푸근하게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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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초에서 40초, 서너줄 문장의 안내 방송이지만, 직접 써 내려간 소소한 메시지로 승객들과 소통한다. 녹음된 안내 방송을 트는 대신 생방송으로 하는 멘트 방송은 업무의 외적인 부분이다. 잘한다고 해서 연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기관사 개인의 선택인 것이다.
승객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그의 안내방송 비결은 뭘까. “마음가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매일 같이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 잖아요. 승객들이 제가 운행하는 열차에 올라탔을 때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책을 읽다 보면 한 번쯤 그가 운행하는 열차를 타 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지하철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가 승객들의 지친 삶을 위로해주고, 또 나를 조금은 특별하게, 따뜻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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