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맘때는 굳이 특별한 장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어딜 가더라도 푸른 하늘 그림 같은 풍경이 깔려 있어서다. 깊은 가을 풍경으로 들어가 있노라면, 몸은 저절로 휴식을 얻고 마음의 양식은 가득 채워진다. 남쪽 끝, 경남 사천으로 한달음에 달려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눈높이를 낮추면 ‘자연의 얼굴’이 여행객을 반겨준다. 사천대교 앞 거북선 마을부터 남일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대표적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속삭이듯 가까이 다가와 여행객을 위로한다. 여기에 한국의 금문교라 불리는 창선삼천포대교와 옹기종기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실안낙조가 이어지는 길을 달리다 보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낭만에 빠져든다.
국내 최초로 섬과 섬을 잇는 다리 ‘창선삼천포대교’
사천의 최대 랜드마크는 창선삼천포대교(436m)다. 삼천포항 어디서든 잘 보여서다. 사천시 대방동에서 모개섬을 지나 초양도, 늑도를 거쳐 남해군 창선도까지 연결된다. 우리나라 최초로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섬에서 섬으로 연결될 때마다 다리는 이름을 바꿔 단항교,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가 된다. 이 5개의 다리 모두를 일컬어 창선·삼천포대교라 한다.
사천바다케이블카 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실안낙조 풍경
다리 위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다리를 배경으로 노을 풍경을 담기 위해 삼천포항 주변을 바삐 오가는 여행객을 이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말에는 다리 조명으로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3번 국도 실안교차로에서 삼천포대교 방향으로 이동하다 삼천포해상관광호텔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나오는 전망대와 정자로 가면 된다. 삼천포대교공원 수상무대 근처에서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방진굴항
삼천포대교 바로 아래에 있는 대방진굴항에서는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원래는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만든 항구다. 현재의 모습은 조선 후기에 다시 쌓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지금도 이곳 주민들의 작은 배가 묶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록빛을 띤 물 위로 비치는 고목의 그림자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로 쌓은 항구 주변을 거닐며 삼천포항과 삼천포대교를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다. 이순신 동상까지 가는 길에는 벤치가 여럿 있어 잠시 그늘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다.
삼천포 각산에서 초양도로 이어지는 사천바다케이블카
바다와 섬, 그리고 산을 오르는 ‘사천바다케이블카’
삼천포대교 바로 위로는 사천바다케이블카가 다닌다. 2018년 4월 개통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바다와 섬, 그리고 산을 아우르는 케이블카다. 해상 케이블카와 산악 케이블카를 반반 섞어놓은 모양새다. 전체 길이는 2340m. 대방정류장에서 초양정류장을 잇는 해상 구간이 816m, 대방정류장에서 각산정류장을 잇는 산악 구간이 1614m다. 삼천포대교공원 앞 대방정류장에서 출발해 옥빛 바다를 건너 초양정류장까지 다녀온 케이블카는 대방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곧바로 전망대와 봉수대가 있는 각산(해발 408m) 정상에 오른다. 대방정류장에서 초양정류장과 각산정류장을 거쳐 대방정류장까지 돌아오는 데 25~30분 걸린다.
사천바다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실안낙조 풍경
사천바다케이블카는 빨간색 일반캐빈(30대)과 크리스탈캐빈(15대)이 운행한다. 크리스탈캐빈은 일반캐빈과 달리 바닥을 두께 27.5mm 강화유리로 마감했다. 덕분에 해상 구간을 지날 때는 아름다운 바다가, 산악 구간을 오를 때는 푸른 숲길이 발아래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천바다케이블카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각산전망대에서 보는 창선·삼천포대교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지만, 전망대에서 마주한 장면은 감동이 다르다. 모개섬, 초양도, 늑도를 지나 남해군 창선도로 이어지는 5개 다리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물길과 어우러진 풍경은 사천이 자랑하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에 다소곳이 자리한 솔섬, 학섬, 두응도, 박도 등도 아기자기하다.
삼천포 각산에서 남해 초양도를 가로지르는 사천바다케이블카
각산 편백숲에서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끼다
각산정류장에서는 각산 정상까지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정상에는 각산전망대 외에도 각산정류장 3층과 산림초소 앞에 전망대가 있다. 산림초소 앞 전망대는 각산전망대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인데, 각산전망대만큼 시원한 전망은 아니지만 숲길이 워낙 예뻐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산책하듯 천천히 다녀오기 좋다.
각산전망대 뒤로 보이는 큼직한 돌탑은 사천 각산봉수대(경남문화재자료 96호)다. 고려 시대에 설치해 1895년(조선 고종 32)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큼직한 원형 대에 연통을 얹은 지금의 봉수대는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복원했다. 당시 함께 확인된 건물터에는 봉수군 가옥과 봉수대 창고가 자리했다.
사천케이블카 자연휴양림
각산에는 편백향 가득한 힐링공간인 ‘사천케이블카 자연휴양림’도 지난 8월 문을 열었다. 지난 2008년부터 추진해 올해 5월 공사를 마무리했다. 휴양림은 39.4ha 넓이 규모다. 울창한 숲과 계곡 사이에 자리잡은 숙박동(22실), 캠핑이 가능한 야영데크(15개소), 샤워 시설을 갖춘 야영센터 등이 있다. 또 계곡물 탁족장, 어린이 물놀이장, 숲 놀이터, 숲 탐방시설(1.2km) 등 다양한 체험시설도 설치했다.
특히 숲속 탐방로는 수만 그루의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숲은 잘 정돈되어 있지만, 대체로 높게 자란 편백 덕에 깊고 그윽하다. 목적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걷거나 사색하기 좋고 쉼을 가져봄 직하다. 하늘 위로 쭉쭉 뻗은 편백 숲 사이로 오솔길을 내, 편히 오가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과 코끝에 맺히는 은은한 향기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항균·살균 작용은 물론, 아토피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과 청량한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마음속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듯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