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하루키' 유감

  • 등록 2013-07-16 오전 7:11:00

    수정 2013-07-16 오전 7:11:00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4). 그 바람이 다시 불었다. 예상됐던 일이다. 국내서 200만부 팔린 ‘1Q84’ 이후 3년 만의 신작 소식이 일본서 날아들었을 때부터다. 유독 편식이 심한 국내 독자들에게 그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다. 그러니 그를 향한 무모하리만큼 엄청난 베팅이 이뤄지지 않았겠는가. 하루키의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출간한 민음사는 계약서에 써넣은 선인세 ‘1억 5000만엔(당시 16억 6000만원) 이상’으로 국내 최상위 출판사의 위세를 여지없이 과시했다. 최소한이라 해도 100만부 이상은 팔려야 회수할 수 있는 액수다.

이 베팅을 두고 터무니없다는 의견은 의외로 적었다. 뽑고도 남을 거란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계산이 된다면 도박이 아니다. 그저 좀더 못 써 탈락된 출판사들이 닭 쫓던 개처럼 입맛만 다실 뿐. 이미 기대에 부응할 조짐은 보였다. 출간된 지 보름 남짓한 지금까지 30만부 정도가 판매된 걸로 알려졌다. 덕분에 만성불황의 정점서 터진 사재기 사건으로 우울감이 팽배하던 출판계에 모처럼 ‘팔린다’가 떴다. 그러나 비관론은 여전히 떠돈다. 결국 또 한번 한국사회 특유의 기형적 문화열풍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마케팅에서 왔다. 일본 도쿄서 지난 4월 독자들에게 밤새워 서점을 지키게 한 이벤트가 고스란히 서울서 재현됐다. 시내 한 대형서점에 세운 긴 줄은 이미 준비가 돼 있는 국내 독자들을 흔들어놨다. 2차 소비도 끌어냈다. 소설서 소재가 된 프란츠 리스트의 음반 ‘순례의 해’는 국내 발매 3주여 만에 1500장이 팔려나갔다. 찾는 사람이 없어 절판됐던 수입음반을 발빠른 음반사가 국내 라이선스로 내놓은 것이다.

이쯤 되자 여기저기서 복잡한 심경이 삐져나온다. 한국은 왜 하루키 같은 작가를 배출하지 못하는가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자책에 속한다. 감각적 트렌드로 무장한 하루키에선 엄숙주의 혹은 날림주의로 갈린 한국작가들에게서 찾기 힘든 ‘소질’이 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20~40대를 아우르는 감성을 내보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류 문단을 벗어나고도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된다. 대중성과 작품성이 교묘하게 결합됐다는 거다. 그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1980년대 후반. 원제 ‘노르웨이 숲’을 번역한 ‘상실의 시대’는 거대담론에 짓눌려 있던 한국 문단과 독자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의 손끝에 딸려 나온 재즈, 와인, 클래식, 섹스. 당시 누가 감히 쓸 수 있었겠는가. 그가 품은 불확실성조차 신선했다.

그런데 탄식과 숫자의 거품이 빠지면서 비로소 들여다본 새 소설 안에선 20여년 전 하루키 그 예의 모호성이 발견된다. ‘문장은 간결하나 불명확한 의도는 그대로다’ ‘흡인력은 강렬하나 설정·인물이 전작들과 겹친다’ 등등. 한마디로 결론을 감춘 복제식 구성을 다시 구사했더란 말이다. 정리하자면 책을 펼치기 전 그 ‘예외 없는’ 현상에 놀라고 책을 펼친 후엔 그 ‘색채 없는’ 동어반복에 허탈하게 된 셈이다.

하루키가 열광할 만한 작가인가 아닌가는 다른 차원이다. 이보단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화허세가 되레 문제다. 가령 하루키 소란에 동참해 줘야 지금 내 문학을 향한 갈증이 해소된다는 식의 암묵적인 합의가 거슬린다. 특히 이번 경우 하루키에게 열광한 게 아니라 하루키 열풍에 열광한 경향이 짙다. 물론 취향일 수 있다. 맞다. 수십 수백만명이 가진 고른 취향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가공된 취향이라면 문제가 있다. 베스트셀러가 추세를 읽는 지표가 아닌 구매를 부추기는 선동이 되면 곤란하단 얘기다.

단행본 한 권을 번역·출간하는 데 든 계약금 16억원이 정상인가. 그런데도 이 뒤틀림이 연속적인 성공을 낳게 된다면 그땐 멈출 재간이 없다. 1종이 100만부 팔리는 시장보다 100종이 1만부씩 팔리는 시장이 더 건강하다. 그래도 지독한 불경기에 활기가 돌지 않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이토록 척박하고 약해 빠진 문화구조를 탓할 수밖에.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무안공항 여객기 잔해
  • 시선집중 ♡.♡
  • 몸짱 싼타와 함께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