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서울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 ‘행복한 베이커리 &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는 중복장애(지적·자폐) 윤장호(27)씨.(사진=황병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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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카페라테에 하트 모양을 잘 그리려고 연습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많이 오게 할까 고민 중이거든요.”
윤장호(남·27) 씨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여기에 지적장애도 갖고 있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단하기 쉽지만, 일터인 카페에선 누구 못지않은 ‘베테랑’이다.
윤 씨는 서울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 1층 내 ‘행복한 베이커리 & 카페’에서 2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이데일리가 동행취재를 위해 만난 22일에도 그는 여느 때처럼 바쁘게 손을 놀렸다.
오후2시. “샤인머스켓 모히토 하나!”라는 카페 점장의 주문에 윤 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료를 담을 투명 플라스틱 컵을 꺼낸 뒤 저울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설탕시럽과 샤인머스켓 농축액, 모히토 시럽, 페퍼민트 추출액 등 각종 액상 재료를 컵에 넣고 흔든 뒤, 저울 위에 올려 정량 무게가 맞는지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가득 채우고 탄산수를 부었다. 윤 씨는 “카페 메뉴 중에 샤인머스켓 모히토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라면서 “제조법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적어 놓고 매일 확인한다”고 했다. “단체 손님이 오면 불안하다”는 그는 음료제조법을 손수 적은 수첩을 끼고 ‘실수’를 줄이려 노력했다.
이 카페는 푸르메재단과 SPC그룹, 서울시가 함께 운영하는 베이커리 브랜드다. 서울시가 장소를 일부 제공하고, 푸르메재단이 장애인 채용, SPC그룹이 매장 운영과 설비, 운영 노하우 등을 지원한다. 상암점 등에서 윤 씨를 포함한 장애청년 바리스타 17명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근무하고 있다. 윤 씨의 일은 음료 제조, 고객 응대, 주변 정리 등 평범한 바리스타와 다를 바 없다. 이 카페의 점장은 “(윤 씨는) 매장 내 분위기 메이커”라며 “부끄러움을 타긴 하지만 성격이 밝고 동료들 말에도 잘 웃어준다, 손님들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5시. 설거지 등을 마치고 퇴근한 윤 씨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도움 주는 이 없이 오롯이 혼자서다. 윤 씨와 부모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홀로 외출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바리스타의 꿈을 키운 건 중학교 때부터다. 윤 씨의 ‘자립’을 고민한 어머니를 따라, 집에선 멀지만 장애인도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배워 꿈을 이뤘다. 윤 씨는 “유튜브에 라테 아트(우유로 잔에 그리는 일) 만드는 방법 같은 게 잘 올라와 있어서 보면서 배우고 있다. 더 잘하고 싶다”고 웃었다.
| 윤 씨가 각종 음료 제조법을 기억하기 위해 써놓은 수첩.(사진=황병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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