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소유 '용산' vs 서울시 소유 '송현동'…결국 서울서 2파전

'이건희 기증관' 건립부지 2곳 압축
삼성미술관 터 될 뻔했던 '송현동'
박물관·미술관 20곳 포진한 '용산'
연내 최종 확정해 2027년께 완공
부지비 없이 건축에 1000억 소요
  • 등록 2021-07-08 오전 3:30:00

    수정 2021-07-20 오전 8:57:43

전국 40여곳 지자체의 ‘유치경쟁’을 불렀던 ‘이건희미술관’이 결국 서울에 들어선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를 2곳으로 압축하고, 연내 최종 부지 선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에 오른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위)와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서울 용산구 용산동 부지(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결국 서울에 짓는다. ‘이건희미술관’의 윤곽이 잡혔다. 일단 명칭은 바꿨다.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가칭·이건희기증관)으로 추진한다. 장소는 확정하지 못했다. 후보지를 2곳으로 압축한 채 여전히 열어뒀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용산구 용산동 부지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최종 선정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예정이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을 발표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그중 송현동과 용산을 후보지로 선정한 데 대해 “기증자의 정신과 철학, 국민의 문화향유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란 점을 강조했다.

옛 미 대사관 직원 숙소 터였던 ‘송현동’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위치한 ‘용산’은 일찌감치 이건희미술관이 들어설 최적지로 ‘찍혔던’ 곳이다. 하지만 미술계 전문가들은 “결국 이건희미술관 건립 부지는 송현동으로 결정이 날 것”이라며 “굳이 두 군데를 후보지로 뽑은 건 반발하는 지자체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집 걸러 미술관, 길 건너 인사동…‘상징성·요충지’ 송현동

3만 7141㎡(약 1만 1235평). 송현동 부지는 ‘상징성이 큰 전략적 요충지’란 점이 부각되며 관심을 끌었다. 경복궁을 마주보고, 한 집 걸러 한 집이 미술관·화랑인 삼청동·북촌과 연결돼 있다. 길 하나만 건너면 인사동이다. 게다가 삼성가가 일찌감치 눈독을 들였던 상징성이 부각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1997년 삼성문화재단은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땅을 매입키로 했다. 이른바 ‘삼성미술관’ 자리로 낙점한 거였다. 하지만 때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환율이 폭등하자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삼성생명이 다시 사들이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11년간 각종 규제에 묶여 아무것도 못해보고, 2008년 한진그룹(대한항공)에 팔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대한항공도 부지 활용에는 실패했다. ‘7성급 한옥호텔과 복합문화단지’를 야심차게 발표했으나 ‘학교 주변에 관광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에 막혔다. 대한항공은 행정소송으로 저항했으나 2012년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자금난에 직면하자 ‘땅을 매각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나선 타자가 서울시다. 지난해 6월 “이 땅을 매입해 역사문화공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헐값에 못 넘긴다”고 반발한 대한항공과 팽팽히 맞섰더랬다. 1년여의 실랑이 끝에 지난 4월 27일 결론이 났다. 대한항공이 LH에 이 땅을 팔고, LH는 이 땅을 서울시 사유지 중 ‘어떤 곳’과 맞교환하는 것으로.

만약 송현동이 최종 부지로 선정되면 문체부는 삼각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단 오세훈 서울시장은 송현동 부지 가능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한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관광객이 오면 한 번에 ‘원스톱’으로 다 볼 수 있는 위치상·지리상 장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움·아모레 등 기업미술관 성지…‘미술 인프라’ 용산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에 오른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이미지=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그간 ‘용산’이라고만 오르내렸던 부지의 정확한 지명은 ‘용산동6가 168번지 6’.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용산가족공원 내 문체부가 소유한 땅이다. 용산도 송현동 못지않은 ‘미술 인프라’를 갖췄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기준으로 국립한글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 20여개 대형 박물관·미술관이 모여 있다.

막연하게 거론되던 용산이 후보지로 떠오른 건 지난 5월 용산구가 문체부에 이건희미술관 건립을 제안하면서다. 용산구는 막강한 인프라에 더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삼성가가 대를 이어 살아온 ‘제2의 고향’ 땅”이란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송현동이 가진 삼성가의 상징성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전국 다른 지자체와는 달리, 용산구는 유치사업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의 저항을 맞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구가 제안한 부지는 정부가 용산국가공원을 조성하려 추진 중인 대상지 경계에 포함된 곳”이란 주장을 펼쳤다. 이에 용산구는 “이건희미술관 건립을 제안한 부지는 문체부 소유며, 용산공원 조성 예정지와는 관계가 없다”는 해명을 이어왔다.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에 오른 서울 용산구 용산동 부지(이미지=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기증품 대부분 집결…1000억원 들여 2027∼2028 완공 예정

이건희 기증관을 송현동 혹은 용산에 세우기로 한 가장 큰 이유로는 ‘전문성과 교류의 용이함’이 꼽힌다. 황 장관은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기반시설을 갖춘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에 있다”는 점을 먼저 들고 나왔다.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상승효과를 기대할 만한 충분한 입지여건”이란 거다.

기증관 건립에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황 장관은 “2억여원을 들여 용역을 시작했다”면서 “기증품을 조사하고 등록하는 데 2∼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만 밝혀둔 상태다. 이후 3∼4년의 설계·건축을 거친다고 할 때 완공까진 대략 6∼7년쯤 뒤를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완공한 기증관에서 전시를 볼 수 있는 시기는 2027∼2028년쯤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할 만한 유사 사례가 있다. 2013년 건립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다. 2009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인 신년교례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 부지 일대에 국립미술관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이후 4년 6개월여만에 완공하고 5개월 뒤 비로소 대중에 공개했더랬다.

건립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까. 송현동이든 용산이든 부지를 구입하는 데 비용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송현동과 용산, 모두 사유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송현동은 서울시가 소유권 이전 중이고, 용산은 문체부 소유다. 다만 송현동으로 최종 선정하는 데는 서울시와 협의가 필수다. 문체부는 “건축비 정도를 부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황 장관은 “1000억원 이상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황 장관은 ‘이건희 기증관’의 후보지로 서울, 그중 송현동과 용산으로 압축·결정한 데 대해 “기증자의 정신과 철학, 국민의 문화향유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란 점을 강조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날 함께 브리핑에 나선 김영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서울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은 “용산과 송현동 모두 좋은 장소지만 송현동이 더 장점이 많아 보인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미술관은 길을 걷다가 쉽게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용산으로 할 땐 접근성을 위한 진입로가 새롭게 필요하지만 송현동은 이미 갖춰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소가 어디든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결정한 이상 이 회장의 기증품(2만 3181점) 대부분은 새로운 미술관에 모이게 된다. 전국 지방 미술관에 분산된 102점을 제외한 나머지 2만 3079점이다. 현재 2만 3079점 중 문화재·고미술품 위주의 2만 1693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근대미술품과 서양회화·조각 위주의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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