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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대 초반의 한 청년이 갤러리를 찾아와 또 사정을 했습니다. 이전까진 전화를 몇 번이나 했었고요. 한 중견작가의 작품을 꼭 갖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입체회화란 독특한 작업으로 평단의 호평과 컬렉터의 인기를 동시에 받는 작가였습니다. 대학생인데 곧 군대를 간다더라고요. 이 작품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고 아르바이트도 했다고요. 작품가가 3000만원이니 적은 돈이 아닌데, 결국 그 친구에게 작품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한남동 B갤러리)
#3. “갤러리스트로 10년을 넘겼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처음 팔아봤어요. 한 번은 인스타그램에 소개한 작품을 보고 갤러리를 찾은 30대에게 1300만원쯤 되는 그림을 바로 팔았고요. 또 한 번은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1500만원쯤 되는 그림을 미국 뉴욕에 사는 30대 청년에게 팔았습니다. 구매자가 실물 확인도 안 한 작품을 뉴욕으로 바로 줬지요.”(성수동 C갤러리)
전통 컬렉터 줄 세우는 새로운 컬렉터
조용하던 화랑가에 요즘 화젯거리는 단연 2030세대다. 화랑에 어렵게 들러 화상에게 작가·작품 소개를 받고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작품 한 점을 사가던, 예전 컬렉션 방식은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주도권도 뺏겼다. 나이 지긋한 컬렉터들조차 2030 뒤에 줄을 서고 순서를 기다려야 인기작품 한 점을 얻을 수 있다.
수십년의 연차를 자랑하는 컬렉터까지 밀어낸 2030은 누구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을 거라고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과 금융계·IT업계 등 고액 연봉자도 있지만 공무원을 비롯해 평범한 직장인까지 직업군은 다양하다. 그만큼 시장의 ‘양극화’는 불가피하다. 5000만원 안팎의 작품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층과 200만∼500만원대 작품에 만족하는 층으로 나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시장에 유입된 2030이 막연한 실체가 아니란 거다. “실제로 적극 유입됐다”는 게 크고 작은, 제각각의 작가와 컬렉터를 보유한 화랑가의 공통된 목소리다.
“1000만원 내외 국내외 현대미술품에 관심 높아”
‘미술품’을 적극적인 투자의 대상으로 끌어들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아트+재테크’란 뜻의 아트테크라는 말은 더이상 신조어도 아니다. 감상에서 재테크로 이동해가는 2030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 역시 전통적인 컬렉터와는 다르다. 덕분에 문턱이 낮아진 온라인경매, 대중화한 아트페어에서 직접 미술품을 사들이는 것 외에 아트테크 전문 갤러리를 통한 공동구매에도 적극적이다. 아트투게더, 열매컴퍼니, 아트앤가이드 등 미술시장의 ‘신규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도 증가세다. 이 중 아트앤가이드는 2019년 16억 4950만원, 지난해 35억 5578만원이던 미술품 공동구매가 올해는 상반기도 지나기 전에 이미 34억 4780만원을 찍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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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게임하 듯 투자”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20대 후반 회사원은 ‘몇 개월 안 된 초보 컬렉터’로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철학’은 확고하다. 마음에 담은 그림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필수라고 귀띔했다. “발견부터 구매까지 모든 과정을 카페나 SNS에 장황하게 올린다”는데 여기까지 정리해내야 비로소 끝났다는 기분이 든다는 거다.
2030세대가 몰고 온 이런 미술시장의 변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조인숙 조은갤러리 대표는 “명품백이나 한정판 운동화에 흥미를 잃은 2030 젊은 친구들이 빠른 속도로 관심사를 이동시키고 있는 중인 듯하다”며 “그 관심을 그들의 방식대로 SNS에 노출하며 소통하는 것을 여러 번 접했다”고 말한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디지털 세대의 역할은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2030세대는 입체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안다”며 “IT·게임·가상현실 등 유년시절부터 감성을 지배당해 왔던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각자의 실적을 쌓고 성과를 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일련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