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삶은 닭, 튀긴 닭, 구운 닭

국내 식용닭 90% 가량이 코니시 교배종 사용
생산성 높아 한국식 치킨 만드는데 일조
육향 짙은 토종닭은 삶거나 굽기에 적당
  • 등록 2018-09-13 오전 5:00:00

    수정 2018-09-13 오후 1:41:29

짙은 육향과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전라도식 닭 숯불구이에는 오래 기른 비싼 토종닭을 쓰는 게 특징이다.(사진=장준우 작가 제공)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우리나라에서 같은 식재료임에도 두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닭과 치킨이다. 삶는 것은 닭이고, 튀기는 것은 치킨이다.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전통의 닭 요리에서는 주로 물로 삶는 방법을 썼으며, 기름에 튀기는 치킨은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넘어왔다. 닭을 튀긴다고 하면 우리에겐 닭 강정이
있지 않느냐고 항변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닭 강정을 비롯한 대한민국 ‘튀김’의 역사는 식용유가 국내에 보급된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기름으로 하는 요리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주로 지졌고 딥 프라이(deep fry) 즉, 튀기는 건 꽤 최근에 받아들인 조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라이드치킨은 본디 미국 남부 지역에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후예들의 소울 푸드다. 백인 주인들은 그들의 노예가 큰 가축을 소유하는 것은 불허했지만, 허름한 숙소 마당에서 소소한 닭 정도를 기르는 것은 허용했고, 착취에 고통 받던 그들이 주말에 모여 그 닭을 기름에 푹 튀겨 먹었던 것이 바로 이 프라이드치킨의 기원이다. 이 프라이드치킨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식 튀김옷, 그리고 염지와 다양한 양념들과 결합되면서 원조를 능가하는, 실제 세계가 주목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만약 ‘치맥’(치킨과 맥주를 합쳐 부르는 말)도 한식이라 볼 수 있다면 요즘 한식 세계화의 선두에는 ‘치맥’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식 치킨은 두 번 튀긴다는 것이 대단한 비밀의 레시피인 것처럼 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코니시 교배종, 부화 후 한달이면 치킨 요리 가능

우리가 프라이드치킨으로 쓰는 닭은 ‘코니시 교배종 (Cornish Cross)’이라 불리는 품종인데, 이 품종은 1930년대에 코니시 품종과 다른 품종들을 교배하여 만든 품종이다. 코니시 교배종의 가장 큰 특징은 빨리 자란다는 점이다. 즉, 생산성이 높다. 이 높은 생산성의 코니시 교배종은 현대 육종기술의 집약체로 주목 받으며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현재 전 세계의 산업화 된 양계농장에서는 모두 이 코니시 교배종의 아종을 주로 사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식용 닭도 대략 85~90% 정도가 이 코니시 교배종이다.

깃털색이 하얀데다 워낙에 빨리 자라는 특성 때문에 ‘팝콘 닭’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니시 교배종은 부화 후 한 달쯤 되면 1.5kg의 크기로 자라고, 도축되어 프라이드치킨으로 요리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닭인 ‘한협’ 품종은 이 크기가 되려면 두 달 정도, 그리고 재래 닭 품종인 제주도 ‘구엄’ 품종은 무려 10개월을 키워야 저 정도 크기가 되니 경제성에 있어 코니시 교배종과는 경쟁이 안 된다. 코니시 교배종이 우리 식탁 위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이유, 우리가 저렴하게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높은 생산성에 있다.

이 코니시 교배종은 빨리 자라는 대신 살을 구성하는 근섬유가 촘촘하지 않고 성기다는 특징이 있다. 성긴 근섬유는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서 닭 살점이 부드럽게 떨어져 나가게 하는데, 이를 부드러운 식감이라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육질이 흐물흐물 거린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실제 코니시 교배종으로 백숙이나 삼계탕을 오랫동안 삶으면 살이 다 풀어져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반면에 겉에 튀김옷을 입히고 빠르게 튀겨 냈을 때에는 ‘겉바속부’(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의 환상적인 조합을 만들어 낸다.

이 코니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별다른 육향이 없다는 것이다. 향이 살짝 비릿하면서 맹맹하다. 이 품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 달도 안 된 어린 닭을 도축하니 육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반면에 석 달 정도 사육한 토종닭을 석쇠나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어보면 확연하게 닭의 육향이 느껴진다. 토종닭을 구우면 가슴살 부위는 닭 육향이 살짝 도는 정도이지만, 움직임이 많은 다리 살 부위는 쇠고기, 돼지고기와 비견할 만한 아름다운 육향을 선사한다. 반면에 코니시 교배종은 육향이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짠 맛을 입히는 염지 작업을 하고 튀김옷을 입혀 튀겨서 먹어야 제 맛이다.

우리는 닭을 전통적으로 삶아 먹었고, 또 최근엔 많이들 튀겨 먹고 있지만, 실은 전남 지역에서는 타 지역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독특한 닭 관련 식문화가 있다. 닭의 뼈를 발라내고 먹기 좋게, 하지만 부위별로 자른 후 아주 약하게 간을 해서, 혹은 소금만 살짝 뿌려서 이를 석쇠위에 올려 구워 먹는다. 이 전라도식 닭 숯불구이는 강원도식의 닭을 큼직하게 잘라서 센 양념과 함께 야채와 함께 볶듯이 굽는 닭갈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음식이다. 정교하게 다듬은 닭을 후끈 달아 오른 숯의 복사열에 살짝 익혀 먹는 닭 숯불구이는 실로 별미이다. 두툼하고 쫄깃한 닭 껍질의 매력이 극대화 되는 방식이며, 닭의 부위별 맛과 식감의 차이를 제대로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토종닭, 삶거나 구울 때가 맛있어

그런데 전라도에서는 이 닭 숯불구이를 할 때 저렴한 일반적인 닭, 즉 코니시 교배종을 쓰지 않고 반드시 오래 기른 비싼 토종닭을 쓴다. 그 이유를 닭 숯불구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전남 광양의 J산장 사장님께 물어 봤더니, 오래 기른 토종닭의 짙은 육향과 흐물흐물 거리지 않고 단단한 살, 그리고 두텁고 쫄깃한 껍질의 식감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 이 전라도 광양식 닭 숯불구이를 먹어 보면 닭의 놀라운 육향을 즐길 수 있다.

요즘 이 닭 숯불구이가 조금씩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서울 강남의 한 닭 숯불구이 전문점에 갔더니 일반적인 코니시 교배종으로 닭을 굽고 있었다. 역시 육향이 느껴지지 않았고, 식감은 물컹거렸으며, 코니시 특유의 얇은 껍질은 토종닭의 두껍고 쫄깃한 껍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맛 천재 전라도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이 친구들이 먹는 방식으로 먹으면 무조건 맛있다. 그러니 구워 먹어보자. 토종닭은 뼈를 발라 숯불이나 프라이팬으로 구워 먹을 때가 맛있고, 코니시 교배종은 염지하고 옷 입혀서 튀겨서 치킨으로 먹을 때가 맛있다. 그러면 삶을 때는? 물론 토종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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