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구도가 뚜렷한 가운데 박지원 민생당 후보는 더 이상 전라남도 목포로의 ‘금귀월래(金歸月來, 금요일에 지역구에 왔다가 월요일에 서울로 돌아간다)’를 할 수 없게 됐고, 서울 강남구(갑)에선 탈북 외교관 출신 국회의원 태구민(태영호)이 선출되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박지워니가 있응께”…12년의 대장정 마무리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정치 9단’ 등의 수식어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박 전 의원은 5선 도전에 실패한 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교체했다.
그동안 개그우먼 박나래, 가수 송가인 등 전라남도가 배출한 유명인사와 함께한 자신의 모습을 내세웠던 그는 손자와 함께한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박 전 의원은 ‘정치 신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지역 국회의원 자리를 내준 뒤 “지난 12년, 그리고 이번 선거 기간 중에도 진짜 최선을 다했으나 목포 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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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누리꾼은 “박지원은 처음으로 ‘우리가 목소리를 내면 그게 될 수도 있구나’라고 지역사회에 생각하게 해준 인물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아 그래도 박지워니가 있응께 한 소리는 하겄재’라고 어른들은 믿으시지. (근데) 그걸 포기하신 거야… 유일하게 김대중 뒤에 욕이 아닌 그냥 이름으로도 부르지 못해 꼭 ‘선생님’을 붙이는 목포 ‘꼰대’들이 DJ 심복을 버리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뽑았어. 정치는 정체되면 안되니까. 바뀌어야 하니까”라고 했다.
이 누리꾼의 글처럼 이번 총선에서 박 전 의원을 비롯해 중진들이 포진했던 광주·전남 국회의원의 세대교체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
박 전 의원은 “남은 임기 5월 29일까지 박지원의 금귀월래는 계속된다. 12년의 대장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겠다”면서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낙선 인사를 전했다.
‘北주민 구한다’ 태구민... “강남이 제 고향”
‘북한 주민을 구한다’는 뜻의 이름 ‘태구민’으로 총선에 임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뒤 “대한민국은 제 조국이고 강남이 제 고향”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 애국가를 부르며 감정이 북받친 듯 오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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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울 강남구 재건축 지역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 의무비율로 법제화 시켜주세요’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청원인은 “냉전시대의 수구적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 태구민 씨를 선택해준 강남구민의 높은 정치의식과 기대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라며 “강남구 전 지역을 대상으로 재건축·재개발 시 의무적으로 새터민 아파트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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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러한 결과가 불쾌했는지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를 통해 지난 17일 강남구를 “부패의 소굴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메아리는 “(강남구에는) 부자들과 특권층이 많이 살고 있어 ‘서울보통시 강남특별구로 불린다”고 소개하며 “부패타락한 생활에 물 젖은 자들이 우글거리는 각종 유흥시설과 유곽들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4년 전 남조선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박근혜, 최순실 추문 사건’의 주범인 최순실도 이곳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특권층 족속들과 박근혜를 쥐고 흔들었다”고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관심을 보였다. BBC는 “태 당선인이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며 “목숨을 걸고 남한에 온 다른 탈북자들에게는 너무나 긍정적인 신호다. 지금 평양에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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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지난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가 총선결과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정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국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태 당선인은 강남 주민이 자신을 뽑아준 이유에 대해 “아직 강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강남 주민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찾아서 온 저의 용기를 보고 더 큰 일을 해보라고 저를 선택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