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충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충남 최남단에 자리한 서천. 우리나라 서해 중심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어촌 마을이다. 북서쪽에서 뻗어내린 차령산맥과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분지, 우리나라 4대강 중의 하나인 금강, 그리고 갯벌과 모래사장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 등 풍부한 관광자원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특히 서천의 해안선은 72.5㎞에 달해 어디서든 해넘이를 볼 수 있다. 그중 해변과 여러 개의 작은 산, 그리고 바다와 맞닿아 있는 기암절벽과 잘 어우러진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낙조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올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잠시 멈춰 그동안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1년 365일 반복되는 새로운 날들이 쌓여 만들어진 지금의 이 순간.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도, 괴로웠던 시간 모두 뒤로하면서 말이다.
충남 서천 장항송림산림욕장의 장항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13만여 그루의 해송 위에서 신축년 한해를 마무리하다
서천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장항읍. 이곳에 서천 9경 중 하나로 꼽히는 장항송림산림욕장이 있다. 한겨울에도 푸른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해변을 따라 1.8㎞ 길이로 이어진 해송 숲이 청정한 공기를 내뿜는다. 은은한 솔향기와 흙냄새가 진동하는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갑갑했던 숨통이 저절로 트이는 기분이다.
장항송림산림욕장이 각별한 이유는 전국 해안 사구에 있는 유일한 해송 숲이기 때문이다.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산림욕장 곁에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넓은 갯벌을 끼고 있는 것도 이곳만의 자랑이다.
이 산림욕장에는 50년 넘게 자라온 검갈색 해송 13만여 그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결 따라 다부지게 굽이친 나무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솔숲 사이로 고즈넉한 산책길이 여러 갈래 이어진다. 흙길처럼 단단한 모랫길 위로 마른 솔가리를 사박사박 밟는 느낌이 특별하다. 그윽한 솔향에 파묻혀 걷다 보면 매서운 갯바람이 실어 나르는 알싸한 공기조차 달게 느껴진다.
충남 서천 장항송림산림욕장의 장항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장항제련소의 굴뚝
숲 너머에는 일망무제로 펼쳐진 갯벌 풍경이 언뜻언뜻 보인다. 곳곳에 마련해 놓은 벤치에 앉아 숲과 마주한 바다 풍경을 즐기기 좋다. 8~9월 보랏빛 맥문동꽃이 카펫처럼 깔리는 절경도 멋지지만 겨울 바다가 주는 운치도 그에 못지않다. 숲길의 끝자락에는 바다로 향한 길이 열려 있어 숲을 빠져나와 해변을 거닐어도 좋다.
장항송림산림욕장 북쪽 끝. 바닷가와 마주한 자리에 위치한 장항스카이워크는 일몰 감상지로 유명하다. 높이 15m, 길이 250m의 스카이워크로, 사철 푸른 해송 숲 위를 마치 카펫을 걷듯 거닐 수 있다. 해송 숲 위에서 탁 트인 하늘과 푸른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이 지은 전망대 아래로 펼쳐지는 해변의 풍경 또한 특별하다. 아래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려다보는 해송 숲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솔숲 길을 따라 청량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걷다보면 온몸이 코발트빛으로 물들 것만 같다.
스카이워크 끝은 전망덱이 있다. 지금 같은 겨울철이면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갯벌이 민낯을 드러낼 무렵의 일몰 풍경은 장관이다.
충남 서천 장항해송산림욕장 장항스카이워크에는 기벌포해전전망대가 있다.
이 장항송림 앞바다는 오랜 옛날 기벌포 해전이 펼쳐진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676년 신라와 당나라가 금강 하구인 기벌포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는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된다. 이후 22회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당나라는 상당수의 전함과 4000여명의 군사를 이곳에서 잃었다고 전해진다. 남쪽 해안 너머로는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보인다. 1970년대 산업화의 상징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210m의 전망산(바위산) 정상에 우뚝 솟은 모습이 일몰 풍경과 어우러지며 더 스산하게 다가온다.
서천 선도리갯벌체험마을에서 바라본 쌍섬. 해변이 아주 고운 모래로 덮여 있어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해안도로 따라 펼쳐지는 서천의 해넘이 포인트
충남 서천 선도리갯벌체험마을 당섬 일몰
서천군 종천면 장구리에서 서면 신합리까지 17.7㎞의 해안도로. 이 해안도로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낙조 감상하기 좋은 해안길’로 선정된 곳이다. 이 도로의 가장 큰 장점은 어느 곳에서 차를 멈추더라도 일몰 무렵이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딱 맞는 해넘이 감상법이다.
충남의 해안이 대부분 리아스식이라서 들고 나는 게 복잡하지만, 서천의 장구만에서 비인만으로 이어지는 해안은 비교적 단순하다. 때문에 해안과 나란한 군도 5호선 드라이브 코스는 직선 주로에 가까워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저녁 무렵의 드라이브는 환상적이다. 이 시간대는 도로 어느 곳에 차를 세워도 일몰의 감동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니 붐비지도 않는다.
도로 중간에는 선도리해변이 있어 한번쯤 차에서 내려 해안가를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바람막이 숲을 이루고, 바로 앞에 쌍섬과 할미섬이 바다에 떠 있어 풍광 또한 뛰어나다. 여기에 해변은 아주 고운 모래로 덮여 있어 물이 빠지면 그 끝이 아득히 보일 정도로 멀리까지 물이 빠진다. 쌍섬과 할미섬까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해안에도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해변 남쪽 끝 작은 바위섬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을에서 안녕을 기원하는 당섬으로 부르는데, 이 소나무 뒤로 떨어지는 일몰 또한 장관이다.
서천 마량포구 동백나무숲 동백정
서천에서 가장 이름난 해넘이 명소는 북쪽 끝인 마량포구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동시에 볼 수 있어 제법 알려진 곳이다. 매년 해넘이·해돋이 행사가 열렸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행사가 취소됐다. 그래도 조용히 해넘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천 화력발전소 뒤편 언덕, 마량리 동백나무 숲 꼭대기에 자리한 동백정이다.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나무 숲은 가파른 해안을 따라 언덕에 동백 8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300~400년이나 된 나무들이지만 한결같이 작달막하다. 이 정도 수령이면 7m까지도 자라지만, 마량의 동백나무는 해풍을 견뎌내느라 안으로 더 단단하게 다져져 기껏해야 2~3m다.
키 작은 동백나무 숲 위로 동백정이 있다.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서해의 풍광은 장관이다. 해넘이가 유명한 서해답게 이곳 역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해넘이 포인트다. 바다 위 오력도라는 작은 섬이 떠 있는데, 이 섬 주변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진다. 오력도에는 옛날 어느 장수가 바다를 건너다가 빠뜨린 신발 한 짝이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