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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수련. 늪이나 연못에 바짝 몸을 붙이고 수면에 잎을 편다. 앞면은 초록이지만 뒷면은 자주. 물속까지 짙게 물들이는 이유가 있었다. 때로는 노랗고 때로는 하얀, 혹은 분홍 꽃을 피우는데, 밤에는 꽃잎을 접는다. 그래서 잠자는 연꽃, 수련(睡蓮)이란다.
# 초록. 노랑과 파랑의 중간. 강렬함보다는 균형감이다. 산성도 알칼리성도 아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중성의 느낌.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차분함, 그 기운으로 세상의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여기까지는 머리로 정리할 수 있다. 수련과 초록. 어차피 둘을 분리할 수 없으니. 하지만 눈앞을 채운 이 공간이 온통 수련이고 온통 초록인 데는 설명이 좀 필요하지 않겠나.
작가 박일용(58)이 화업 40년의 정점을 수련과 초록으로 찍었다. 아니 둘을 나누는 것도 이상하다. 그냥 ‘초록 수련’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선화랑에서 연 개인전 ‘자연으로부터’에는 캔버스를 묵직하게 메워낸 ‘초록 수련’ 천지다. 단단한 붓질로 작은 틈도 없이 수련의 초록잎을 꽉 채운 회화연작 ‘자연으로부터’가 반이고, 크고 작은 원으로 형상화한 수련의 초록잎을 자르고 붙인 부조연작 ‘자연으로부터’가 반이다.
“어릴 때부터 모네의 ‘수련’을 좋아했다. 모네가 파리 인근에 직접 꾸미고 영감을 받았던 지베르니연못을 내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충주 인근에 작가가 조성했다는 ‘연못’ 얘기를 하는 거다. 화랑을 수련밭으로 만든 평면회화와 입체회화 30여점은 모두 그곳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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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연못에는 수련이 있다
왜 모네고 왜 수련인가. 웬만큼 해선 명함도 내밀 수 없단 건 복잡한 계산이 아니어도 쉽게 빠지는 결론이 아닌가. “물론 모네의 강렬한 수련을 이기긴 힘들다. 하지만 연못을 지나다니고 수련을 관찰하다 보니 나만의 대상을 나만의 감으로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문득 19∼20세기 작가이던 모네가 21세기라면 수련을 어찌 구현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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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대로 작가는 국내 대표적인 구상작가. 수많은 정물과 풍경이 그이의 손끝과 붓끝에서 나왔다. “물론 구상이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없어져선 안 될 것 역시 구상이다. 다만 이 시대에는 어떤 감각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겠지. 그래서 구상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녹록한 일인가. “작품이 안 팔리면 공포감이 생긴다. 불안이 엄습하고.” 오죽하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는 말까지 작가가 꺼내놨을까.
결국 그 긴장감을 풀어준 것이 충주고 수련이며 초록이었단 소리다. “모네의 ‘수련’을 작품 소재로 많이 생각해왔다. 본격화한 건 충주로 내려가면서부터고.” 작업공간이 생기니 마음이 편해졌고, 실험적인 어떤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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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수련’은 지지 않는다
그림 잘 그리는 작가. 그는 계명대에 재학 중이던 198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서양화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림을 잘 그려 군대 안 간 첫 케이스’기도 했다. 당시 출품한 ‘상황 846’(1984)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허무·고독에 포커스를 맞춘 정제한 자연경”이란 평가를 받았다. 고교 3학년 때 대구 어느 개인전서 본 하이퍼리얼리즘에 꽂힌 게 계기였단다. 예쁘고 고리타분한 풍경이 아닌 파괴적이고 문명비판적인 풍경. 거기에 영향을 받은 ‘상황 846’ 류의 정물화는 한동안 사회환경의 변화와 맞아떨어지며 화제가 됐고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팔리는 그림은 아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에게 ‘살 길’을 터준 ‘풍경화’를 만나게 된다. 1990년 대구은행에서 달력에 쓸 풍경화를 그에게 제안했던 거다. 결정은 어려웠지만 작가 특유의 텅 빈 듯 고즈넉함이 압도하는 풍경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은 게 있겠는가마는 특히 그이의 붓길은 변함이 없었다. 정물에서 풍경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만 바뀌었을 뿐. 자연주의 철학도 그대로다. 오죽하면 작품명이 고집스럽게 ‘자연으로부터’ 한 가지뿐이겠나. 그러던 작가가 변했다. 그가 ‘실험적인 어떤 것’이라고 말했던 ‘파격’, 이번 전시에서 제대로 소개한 ‘입체회화’ 말이다. 그것도 추상에 가까운 비구상부조다. 수련 잎을 가장 단순화한 형태라 할 원 모양을 철판이나 보드에서 수십 장 오려내선 밝고 어두운, 매끄럽고 거친 ‘각양각색의 초록’을 입힌다. 그러곤 레이어처럼 겹겹이 쌓아붙여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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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직도 마다하고 40여년을 전업작가만 고집했다. 안정적이고 쉬운 길쯤은 터득했을 텐데.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판에 박은 듯한 그림은 죽은 예술을 낳는다”는 게 그이의 철칙이라니. “어떤 것을 하다 보면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묘사만 한다는 게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고.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기능적으로야 요즘 젊은 작가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시도가 바로 창작자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거다.
변화는 계속될 모양이다. “미술재료로는 안 쓸 법한 시멘트판도 만져보고, 이렇게 저렇게 구상 중”이라고 했다. 어디로 튈진 모르겠다. 나아갈지 돌아갈지 미리 결정할 것은 아니라고 하니. 그래, 어차피 비구상의 모티브는 구상이 아닌가. 열린 결말이다. 무엇이 됐든 ‘초록 수련’이 허무하게 지지 않을 건 분명해 보이고.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