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보자. 닭을 키우는 농장이 있다. 그리고 근처에 닭을 잡아 주는 도계장이 있다. 농장에서 닭을 키워 시장에 내려면 닭을 잡아야 하는데 이 농장에 도계 시설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농장은 옆 도계장을 통해서만 자신의 닭을 시장에 낼 수 있으니 교섭력은 도계장 쪽으로 기운다. 농장이 급히 주문받은 것이 있어 오늘 당장 닭 500마리를 도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섭력을 쥔 도계장 사장님은 배짱을 부릴 수 있다. “어휴.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 오늘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하나요? 좀 바쁘니 급행으로 하려면 비용 10% 더 내슈.” 이게 교섭력이다. 강력하다. 농장 사장님은 울며 겨자 먹기로 10%를 더 내거나 멀리 있는 다른 도계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몇 번 손해를 본 농장 사장님이 ‘도계 시설을 우리 농장에다 짓고 말지’라고 생각하고 도계 시설을 지으면 이제 교섭력이 역전된다. 도계장 사장님이 찾아와서 도계할 때 할인해 주겠다고 사정해도 교섭력이 더 강한 농장 사장님은 콧방귀를 뀐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계장 사장님이 자신의 도계장에 자동화 시설을 투자한다. 1만 마리를 도계하는데 20명의 직원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1명이면 되는 혁신인 것이다. 농장 사장님의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다. 닭 한 마리를 직접 도계하는데 1000원이 드는데, 옆 도계장으로 가면 100원으로 줄어든다. 교섭력은 다시 도계장 쪽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비슷한 도계장이 여러 개가 인근에 생기면? 선택권이 늘어 난 농장 사장님에게로 교섭력이 또 돌아온다.
교섭력은 내가 단순히 원한다고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교섭력은 마치 양쪽 끝에 추가 올려진 양팔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운다. 무거운 추를 가진 쪽은 큰 소리 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 자체가 불법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추의 무게에 따른 저울의 기울어짐을 바꾸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양팔 저울을 받치고 있는 지렛목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지렛목을 움직이면 그에 따라 양팔 저울이 한쪽으로 기운다. 기우는 방향을 아예 반대로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이 지렛목의 위치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다.
식품 안전과 환경을 고려한 정부의 정책과 규제는 그 때 분명히 옳았다. 동시에 축산 생산자와 도축업자 간의 교섭력 저울을 받치고 있는 지렛목의 위치를 크게 옮겨 놓았다. 도축장은 숫자가 대폭 줄며 대규모화 되고 신규 진입이 억제되어 있는 반면, 축산 생산자들은 숫자가 많고 소규모다. 당연히 저울은 도축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안성에 있는 토종닭 전문 ‘조아라’ 농장에 농장 내 자가 도계시설 허가를 내주었다. 조아라 농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토종닭을 기르는 농장으로 사료도 일반 사료가 아닌 자체 제작 발효 사료를 먹이며 방목하여 기른다. 이 농장의 닭은 일반 닭들과 그 특성이 매우 다르고, 대형 도계장의 자동화 시설의 규격에 맞지 않아 도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도계 허가로 더욱 차별화된 품질의 닭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다. 농식품부의 농장 내 자가 도축장 허가는 도축장 쪽으로 크게 기울었던 교섭력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양성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