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맨' 위한 항변 "이래도 다 푸틴 탓이야?"

독일기자, 5년간 푸틴 밀착 취재
서방 '독재자' 비판에 이의 제기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내전 개입
미국·유럽 눈치안보고 '자국이익'
'강한 러시아'로 4번째 대선 압승
…………
푸틴: 권력의 논리
후베르트 자이펠|382쪽|지식갤러리
  • 등록 2018-03-21 오전 12:12:00

    수정 2018-03-21 오전 1:17:49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실시한 대선에서 76.7% 지지율로 압도적으로 승리한 뒤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집회에서 감사연설을 하고 있다. 저자 후베르트 자이펠은 “푸틴을 악의 화신, 독재자 등으로 몰고가는 서방의 편협하고 일방적인 시각이 문제”라며 “러시아 지도자가 러시아 국민의 이익대로 행동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박한다(사진=AFP/연합뉴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푸틴은 어디 있나.’ 2015년 초. 세계 언론이 단 하나의 헤드라인 아래 미친 듯이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다. 며칠째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그는 예정한 카자흐스탄 방문을 취소했고, 특히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연례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비밀경찰조직(KGB) 출신인 그가 ‘가족행사’에 빠졌다? 이건 대형사건이었다. 러시아산 독감에서 시작한 추측은 갈수록 불어났다. 뇌출혈? 쿠데타? 크렘린궁 지하실 감금?

별별 의혹과 짐작이 난무한 가운데 애꿎은 괴롭힘을 당한 건 백악관 대변인이었다. ‘미국은 알고 있지?’ ‘오바마 대통령은 사전에 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변인의 답변은 참으로 궁색했다. 어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고, 오늘은 “대통령이 바쁘니 관련 부서에 물어보라”고 했다.

이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뒤 그가 멀쩡하게 나타났다. 그러곤 해명을 늘어놨다. “감기몸살로 바깥 활동을 자제했다”고. 여기까지도 얄미운데 한마디를 꼭 더 붙인다. “나와 관련한 추측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아내 혹은 연인이 스위스에서 출산해 휴가를 냈다는 얘기”라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비난은 하늘을 찔렀다. 기함할 노릇이 아닌가. 점잖게 말해도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서방언론의 호들갑이 더 과하다고. 조금이라도 그와 연관됐다 싶으면 늘 이런 식이라고. ‘도를 넘어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며 몰아간다고. 하지만 그는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 목소리는 러시아에서 나온 게 아니다. 자칭타칭 ‘그’와 연결고리를 갖는 유일한 서구 언론인이란 독일 방송기자 후베르트 자이펠(68)의 입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66) 러시아 대통령. ‘그’가 대통령직 6년을 더 보장받았다. 2000년 대통령에 첫 당선된 뒤 재선까지 8년, 총리 4년, 다시 대통령으로 6년, 또 이번 재선까지, 총 24년간 장기집권의 길을 놨다. 러시아로만 볼 때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최장기 통치기록을 좇는 모양새다. 스탈린은 30년을 머물렀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도 대단하다. 이번 대선에선 76.7%를 챙겼다. 그런데 이전인 2015년 푸틴은 지지율을 89%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가 뭘로 그런 인기를 얻는지 정리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를 살렸다’였다. 푸틴이 첫 취임하던 때만 해도 국민의 33.3%가 가난에 허덕였다는데 이 비율은 15년 새 11%로 하락했다. 기대수명은 늘고 강도·살인사건은 줄었으며, 러시아인을 괴롭히던 ‘우린 멸종할 거야’에 대한 두려움도 뚝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서방은 왜 푸틴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책은 바로 그 논란을 풀어보자고 덤벼든 저자 자이펠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전혀 속지 않고 진짜 모습에 근접해” 알아냈다는 푸틴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서방 여론형성가들의 편협한 논조”에 대한 이의제기인 셈이다. 한마디로 푸틴을 위한 항변이다.

△악의 화신? 일방적인 서방시각이 문제

수식도 많다, 이 남자는. ‘스트롱맨’ ‘독재자’ ‘비정상’ ‘문제적 인물’ 등. 압권은 ‘골칫거리’다. 골칫거리는 저자가 가장 혈압을 높인 부분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게 다 푸틴 때문이야”로 몰고가면서 골칫거리란 타이틀까지 붙였단 거다. 이유도 많다. 선거조작부터 반체제인사 탄압, 탈레반 등 테러국에 대한 무기지원, 주변국에 대한 군사공격 등등. 자국은 물론 유럽·중동에서 벌어지는 긴장상황 전부다. 그러다 그 끝은 새로운 냉전의 서막을 연 ‘악의 화신’으로 끝난다고 했다.

사실 서방의 트집이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푸틴의 일대기 사이사이엔 굵직한 사건·사고가 줄줄이 꽂혀 있다. 핵잠수함 크루스크호 침몰(2000), 러시아령이던 조지아·우크라이나 혁명(2003), 조지아와 전쟁(2008), 전직 CIA 요원이자 내부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피신(2013), 우크라이나 내 크림반도 무력병합(2014), 이에 미국·유럽연합의 제재 발동(2014). 또 그 사이 298명을 태운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피격됐고(2014), 틈틈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고.

그럼에도 저자의 입장은 단호하다. 서방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러시아 지도자가 러시아 국민의 이익대로 행동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는 거다. 특히 미국에 ‘맞짱뜨는’ 이미지는 러시아인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거다. 저자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우크라이나 사태만 보자.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구획한 ‘선과 악 구도’는 서방의 일방적인 시각일 뿐이란 거다. 푸틴은 러시아인이 영토통합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걸 알았고, 이를 위해 ‘강한 러시아’의 외피를 동원했다는 거다.

나아가 ‘악의 축’이니 ‘악의 화신’이니 하며 자신들의 인기몰이에 푸틴을 끌어들인 미국 대통령들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쏘아붙인다. 그나마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발언은 저자에게 꽤 시의적절했다. “푸틴을 악마로 만드는 건 전략이 아니다. 그건 전략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했더랬다.

△“러시아인이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

저자가 미리 알았다면 기꺼이 보탰을, 옆길로 잠깐 새자. 독재자 운운하지만 사실 푸틴은 ‘세계 장기독재자’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역대 최장기 기록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가지고 있다. 장장 49년. 2위는 장제스 대만 총통의 47년, 3위는 북한 김일성의 46년이다. 푸틴은 20위 안에 들까 말까.

한 가지 더. 원저를 출판한 2015년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이다. 두 ‘비정상’의 드라마틱한 대결구도가 책에는 빠져 있단 얘기다. 아쉬운 지점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푸틴의 ‘맞짱맨’ 기질은 더 생생하게 살아났으니.

5년을 푸틴에 딱 붙어 “모든 걸 취재했다”는 저자는 어쨌든 착한 결론에 공을 들였다. 푸틴에 대한 서방의 기대는 오래 다듬어온 허상의 연속이라고. 궁극의 세계평화를 위해선 타협이 필요하고, 그 타협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두 문화에 대한 주권을 상호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러시아와 유럽·미국·중동 간의 정치·외교, 긴장·갈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흥미로울 대목이 적잖다. 아니더라도 크렘린궁을 축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황을 읽는 데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다. 하여튼 저자의 ‘다른 푸틴 보이기’는 성공한 듯싶다. 굳이 정치적 입장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책을 출간한 이후 서방이 겨냥한 ‘공공의 적’이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원톱에서 투톱이 됐단다. 푸틴과 쌍벽까진 아니지만 저자 자이펠이 부상했단 뜻이다. 죄목은 ‘러시아정부를 위한 프로파간다’라고. 기왕 이리 됐으니 조만간 책 한 권을 더 내야 할 듯하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이 마지막 선거유세를 한 곳’까지 포함해서.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림반도다. 푸틴, 정말 간단치 않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초췌한 얼굴 尹, 구치소행
  • 尹대통령 체포
  • 3중막 뚫었다
  • 김혜수, 방부제 美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