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원 적금 부어 '마션' 한번 찍어볼 텐가

우주여행 본격화…과학적 가이드북
무중력 탓, 근육통제 안되고 현기증
좁은 우주선, 끝없는 우주공간 권태
지구 내려다보며 순간 최대한 즐겨야
…………
화성인도 읽는 우주여행 가이드북
닐 코민스|360쪽|한빛비즈
  • 등록 2017-12-06 오전 12:12:00

    수정 2017-12-06 오전 1:35:15

영화 ‘마션’의 한 장면. 화성에 버려졌으나 기발한 생존법으로 지구에 무사귀환한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체험프로그램이 여행상품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저자 닐 코민스는 혹여 화성이주를 결정했다면 지구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사진=‘마션’ 스틸컷).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20만달러(약 2억 1700만원)면 간다. 좀 더 쓰면 30만달러(약 3억 2500만원). 우주여행 말이다. 서민의 지갑사정을 배려한다면 이 무슨 열 받는 소리냐고 할 거다. 하지만 가히 천문학적 액수로 지구를 뚫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정말 저렴한 상품이 됐다. 지구여행이 그러하듯 우주에서도 거리가 멀면 비용은 늘어난다. 일단 3억원, 부지런히 ‘적금을 부으면’ 화성 언저리쯤에 가서 영화 ‘마션’ 한번 찍을 만하단 얘기다.

꿈은 꿀 수 있으니까. 임자 없는 땅인 달의 토지를 분양받은 이들도 570만명에 달한다는데 이 정도 꿈이야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바람잡이를 해놓지 않았나.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 영화고 어디부터 현실일까.

미국항공우주국(NASA) 특별연구원으로 일하며 은하의 진화문제를 파고들었던 천문학자가 나섰다. 막연했던 우주여행을 구체적인 가이드북으로 꾸며 내보자고 한 거다. 전제는 달 구경이나 화성 이주가 공상과학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셈이다.

미덕은 현실감이다. 차라리 너무 생생해서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우주복을 입고 어기적어기적 다니기만 하는 그림은 없다. 어느 여행지나 그렇듯 낯선 곳에서 늘 부닥치는, 바로 먹고 지내는 문제가 관건인 거다. 우주환상도 낱낱이 깨놓는다. 천문학·물리학·생물학·심리학·사회학을 총동원해 우주여행에 치러야 할 대가를 일러준다. 불편과 위험은 물론 거추장스러운 준비까지. 가령 이런 거다. ‘화장실은 어찌 해결하나’ ‘충치가 있으면 나갈 수 없다던데’ ‘우주에서도 멀미를 하나’ ‘섹스는 할 수 있나’ 등등.

△테슬라·아마존…앞다퉈 우주상품 내놓는 건

올초 미국 전기차회사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우주여행프로젝트 ‘스페이스X’를 내놨다. 민간인이 대상이다. 이에 질세라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도 우주여행사업에 숟가락을 들이밀고 있다. 현재로선 머스크가 가장 적극적이다. 내년에는 달, 5년 뒤인 2022년에는 화성으로 관광객을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베조스는 아예 우주여행사를 차렸다. 매년 10억달러(약 1조 828억원)어치 아마존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렇게 덤벼드는 이유가 뭔가. 우주사업이 취미일 리가 없으니, 한마디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단 소리다.

나사의 목록을 들춰보면 가까운 미래에 가볼 수 있는 우주여행지는 1300여군데다. 그중 개발 중인 여행지는 7곳. 무엇보다 거리가 관건이다. ‘지구궤도에 들어서지 않고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오는 여행’ ‘지구궤도에 들어서되 더 나아가지 않고 돌아오는 여행’ ‘달 여행’ 등이 단기코스다. ‘지구궤도를 떠나 근접궤도의 천체에 갔다오는 여행’ ‘지구의 트로이소행성 여행’은 중기코스. 장기코스라면 화성이다. ‘화성의 위성만 둘러보는 여행’ ‘본격적인 화성여행’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돈이 된다고 누구나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온갖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인성은 필수다. 비좁은 우주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사람과 짧게는 며칠부터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함께 버텨내야 하니까. 싸웠다고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화장실은? 샤워는? 섹스는?

힘든 과정을 죄다 거쳐 우주라는 데로 나섰다고 치자.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저자가 강조한 준비물은 멀미패치다. 우주멀미 때문이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우주유영이 그저 재미있겠다 싶지만 무중량 환경은 인체에 치명적이란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현기증·구토·두통·졸음이 몰려든다니. 잘 떠다니기 위해 사전 수중훈련은 필수란다.

근육통제도 안 된다. 무엇을 쥐려고 해도 안 잡혀 스위치를 누르는 일도 쉽지 않다. 절대미각 따윈 이젠 없다. 특히 매운맛을 느낄 수가 없단다. 가장 취약한 건 충치라고 했다. 원인균이 우주에선 40∼50배가량 빨리 번식한단다. 혈액이 발끝 미세혈관까지 도달하는 게 중력 덕분이란 걸 알고 있었나. 우주에선 피가 머리와 팔, 몸통까지 가는 게 전부다. 덕분에 다리는 가늘고 몸통은 퉁퉁해지는 체형으로 바뀔 수 있다. 외계인의 체형이 괜히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닌가 보다.

화장실 이용은 어떻게 하나. 소변은 진공관으로, 대변은 빨아들이는 변기를 사용해야 한다. 샤워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후각이 마비된다는 얘기는 없으니 자기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여행 내내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섹스를 경험하고픈 이들을 위한 팁도 준다. 준궤도비행에서 우주복은 필수니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평상복이라고 해도 미소중력(저중력)은 4분이 고작이라 절대시간이 부족하다는 설명을 보탠다.

신체변화뿐만이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축구장만한 공간? 이런 건 없다. 협소한 공간을 나눠야 할 상황. 프라이버시 어쩌고할 때가 아닌 거다. 동반자는 곧 감시자가 돼야 할지 모른다.

자, 어떤가. 이쯤되면 우주여행이 더 이상 돈자랑은 아니다.

△우주왕따?…인간관계는 우주에서도 문제

흥미로운 건 ‘우주왕따’다. 흔히 지구에서 왕따친구에게 던지는 아픈 표현이 있지 않나. “너희 별로 돌아가!” 그런데 우주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쩌란 말인가. 저자가 진지하게 또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정신건강이다. 권태로움과 예민함은 정해진 수순. 비싼 돈을 내고 ‘1분이 영원’ 같은 ‘무간도’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동반자끼리 서로 신뢰를 쌓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외에는. 떠나기 전 모형 우주공간을 만들고 얼마간 함께 생활하는 게 도움이 될 거란 제안은 했다.

과거 탐험가의 대륙발견이 이랬을 거다. 우주여행은 목숨을 담보로 떠나는 ‘제2차 대항해’다. 안락함 따위는 기대하지도 말란다. 우주는 도전이니까.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긴다’면 얻을 게 많을 거라고 했다.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보기’를 1순위로 꼽았다. 저 작은 땅덩이에서 죽기 살기로 아웅대는 모양새가 얼마나 의미없는지 느껴보라는 거다. ‘우주적 호연지기’가 절로 생길 거란 말이다.

수학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저자는 과학얘기로 한 권을 다 채웠다. 쉬운 글이 강점이다. 수학이든 과학이든 딱 질색이라면 이조차 만만치 않겠지만. 어쨌든 즐기고 위험을 감수하고 정신무장까지, 3박자를 갖춘 여행의 최고지로 빠져들게 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한 데다 모든 것이 또렷해 보이기까지 한단다. 천체를 왜곡하는 공기가 없어서란다. 귀를 막고 눈을 밝힌 수행. 이만한 여행지가 지구 어디에 또 있을까. 우주로 ‘보내버리고 싶은’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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