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촉구의 진정성

날로 커지는 중소기업의 중처법 유예 목소리
시스템 확립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현저히 낮아
  • 등록 2024-02-20 오전 5:45:00

    수정 2024-02-20 오전 5:45: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솔직히 2년 뒤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을지 미지수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 유예를 외치던 한 중소기업계 고위 인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충분히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씁쓸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지난해부터 1년이 넘게 중처법 적용 유예 촉구와 관련된 현장을 찾았지만 듣기 어려웠던 말이 있었다. 바로 ‘사과’다. 모든 현장을 다 찾지 못했기에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던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곽인학 한국금속패널공업협동조합 이사장만이 준비 미흡에 대해 사과의 발언을 꺼냈다. 현장에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과였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적용 유예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수원에서, 광주에서 잇따라 촉구대회를 열고 4000~5000명이나 되는 중소기업인들을 모아 2년 적용 유예를 강경하게 외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메시지는 선명해지고 있다. 지난 14일 수원에서 열렸던 촉구대회에서는 오는 4월 열릴 총선에 맞춰 투표로 심판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너무도 당당한 요구라는 생각마저 든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중처법 유예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정작 법안의 대상이 되는 중소기업계의 사과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이미 시행이 예고됐던 법안인데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2년을 더 유예해달라고 촉구하는 것뿐이다.

물론 중처법은 지나친 엄벌주의의 성격이 짙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장에서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법안의 틀을 만들었는데 그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겠다는 것이어서다. 중대재해를 ‘방지’하자는 법이 아니라 ‘처벌’하자는 법 이름만 봐도 명백하다.

다만 이 때문에 사업주들이 사업장 내 안전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사장님들의 진심 어린 안전 걱정만큼 중대재해를 막아낼 최선의 방도는 없다. 꾸준히 줄어들던 산재사망률은 2016년 1만명 당 0.96명까지 낮췄으나 지난 2022년 기준 1.10명까지 다시 높아졌다. 여전히 안전에 대해서는 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수원, 광주에서 열린 촉구대회에는 총선 예비후보들이 나서 더더욱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수원지역 국민의힘 총선 예비후보자인 김현준 전 국세청장과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원 현장에 들렀다. 광주 출마를 준비 중인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광주 촉구대회에 얼굴을 비췄다. 국회에서 처리할 일을 하지 못해 기업인들이 거리에 나섰는데 양 정당 국회의원과 후보자들이 촉구대회를 함께 한다니 아이러니다. 참석 의사를 밝혀왔어도 돌려보내는 게 중소기업계의 진정성을 보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현장의 노동자 안전이다. 작금의 모습을 보면 중처법도 현장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건 뒷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주어진 시간 동안 중처법에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함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중처법 유예가 가능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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