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16>남극노인 보셨구려 무병장수하시겠소

▲김명국 '수로예구'에 담긴 염원
장수 기원한 조상들 '수노인도' 즐겨 그려
수명 관장하는 별 의인화한 작품으로 인기
거북이 끌고 다니는 장두단구의 '남극노인'
'오래 사는' 넘어 완전·이상적 인간 바람도
  • 등록 2021-05-28 오전 3:30:00

    수정 2021-05-28 오전 5:51:28

김명국의 ‘수로예구’를 족자 안에 들였다. 작품은 17세기에 그린 것으로만 전한다. ‘수노인이 거북(龜)을 끌다’란 뜻이다. 그림 속 노인이 수노인이고 줄에 매달아 끌고 있는 게 거북. 머리가 길고 몸은 짧은 ‘장두단구’의 외형을 지닌 ‘수노인’을 등장시킨 그림은 조선중기 이후 무병장수 염원을 강조하며 많이 그려졌다. 종이에 수묵, 52.7×100.5㎝, 간송미술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요즘 방송이나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건강’입니다. 그런 만큼 현대의학이 발전하고 의료시스템이 개선돼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오래 사는 장수보다는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무병장수’가 더욱 중요한 포인트일 것입니다. 사실 ‘무병장수’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오랜 꿈이자 염원이었습니다. 특히 유교이념이 지배했던 동아시아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임금과 부모의 무병장수가 축복이자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수를 기원하는 의례가 발달했고 십장생을 비롯한 장수를 상징하는 도상이 유행했습니다.

복록을 관장하는 도교의 신선그림을 많이 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그림이 수명을 관장하는 별인 ‘수성’(壽星)을 의인화한 ‘수노인도’(壽老人圖)입니다. 수성은 ‘남극성’ ‘노인성’ ‘남극노인’ 등으로 불렸으며 실제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입니다. 크기도 매우 커서 서양에서는 ‘카노푸스’(Canopus)라고 불립니다. 북극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적위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반구에선 관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분 날 아침 남쪽 ‘병방’에서 나타나 춘분 날 저녁 ‘정방’에서 사라집니다.

이 수성은 동양에서 개인의 장수는 물론 국가의 길흉과도 연관이 있다고 해 매우 중시했던 별이었습니다. 중국에 이와 관련한 사마천(기원전 145?∼86?)의 오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지평선 가까이에 큰 별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남극노인이다. 남극노인이 나타나면 평안해 사건이 없고 나타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늘 추분 때 성의 남쪽 교외에서 관측된다”(‘사기평림 史記評林’ 중).

남극노인 나타나면 사건사고 없이 평안하더라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그려진 노인성을 시작으로 많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8년(경순왕 8년·934년) 가을 9월에 노인성이 나타났다”(김부식 ‘삼국사기’ 신라본기12 경순왕). “임오 남쪽 교외에서 노인성에 제사를 지냈다”(김종서 ‘고려사’ 세가 6년 정종 5년, 1039년 2월).

노인성이 나타나면 평화가 찾아오고 노인성이 보이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믿음으로 노인성을 장수와 길흉과 관계있는 별자리로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중기 이후에는 나라의 길흉보다는 개인의 무병장수 염원을 강조해 ‘수노인도’ 형식의 그림으로 많이들 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 조선중기 화가 연담 김명국(1600~?)의 ‘수로예구’(壽老曳龜)입니다.

아무 배경도 없는 그림에는 좌측을 향해 뭔가를 끌고 가는 노인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노인의 모습이 조금 특이합니다. 머리는 길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하체는 매우 짧아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모습입니다. 이 괴상한 노인은 누구일까요. 힌트는 제목에 있습니다. ‘수로예구’는 ‘수노인(壽老人)이 거북(龜)을 끌다’란 뜻으로, 그림 속 노인이 바로 수노인이고 줄에 매달아 끌고 있는 게 거북인 겁니다. 보통 수노인의 외모적 특징은 머리가 길고 몸은 짧은 ‘장두단구’(長頭短軀)라 하는데, 그림의 인물 묘사와 동일합니다.

노인의 옷차림은 매우 굵은 선과 몇 가닥의 가는 선으로 거칠게 묘사한 반면 얼굴은 긴 눈썹과 수염, 툭 튀어나온 코와 또렷한 눈 등 엷은 필치로 비교적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이 점이 바로 김명국 ‘도석인물화’의 특징입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수노인과 끌고 가는 거북, 둘 다 장수의 상징이니 이 그림이 말하는 것은 간절한 장수의 염원입니다. 아마도 김명국이 어느 어르신 생일잔치에서 그려준 그림이 아닐까 싶은데, 김명국은 이와 비슷한 ‘수노인도’를 여러 점 남겨 당시 ‘수노인도’에 대한 수요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김명국이 그린 ‘수노인도’의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의 염원이라고 해서 ‘수노인도’를 늘 노인과 어르신에게만 그려준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그림을 한 번 볼까요. 머리가 얼굴의 두 배는 될 듯한 큰 수노인이 도사 복장으로 도포를 휘날리며 서 있습니다. 위로 솟은 머리에는 주름이 있고 이마와 구분돼 있어 조금은 어색한 표현입니다. 도포는 옷의 색깔을 달리해 여러 겹으로 표현했고 어깨 좌우에는 담청색 모군(帽裙·모자 뒷면에 달린 천)이 댕기처럼 휘날리고 있습니다. 허리에는 호리병을 차고 그 뒤로는 편경(編磬)을 달고 있는데, 편경의 경은 ‘경사 경’(慶)과 같은 의미로 해석돼 경사스러움을 상징하는 도교의 8보 중 하나입니다. 호리병과 세조대, 신발 앞부분은 붉은색으로 악센트를 줘 생동감을 높였습니다.

작자미상의 ‘수노인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수노인이 든 패 속 ‘목숨 수’(壽) 아래 손자 강원철(姜元鐵)의 이름을 적어,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종이에 채색, 109.0×62.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엇보다 여느 ‘수노인도’와 달리 양손을 앞으로 뻗어 보산운문(寶山雲紋)으로 둘러싼 패를 들고 있는데 안에 ‘목숨 수’(壽) 자가 적혀 있습니다. 수노인만으로도 장수의 의미는 충분한데 거기에 수(壽) 패까지 들고 있으니 간절함이 두 배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간절한 기원을 올렸을까요. 해답은 오른쪽 상단에 적힌 문구에 있습니다. ‘손자 원철의 목숨이 남극처럼 끝없이 누리기를 빌며 그리다.’

비록 짧은 문구지만 이 얼마나 간절한 기원입니까. 노인이 든 패 속 ‘목숨 수’(壽) 아래에도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강원철(姜元鐵). 성은 강이고 이름은 원철인 어린 손자가 몹쓸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을까요.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붓을 움직여 남극노인을 그리게 했던 겁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뜨겁게…생명의 비밀 담은 남극노인

우리나라 옛어른들은 제주를 노인성이 비추는 땅이라 생각했습니다. 제주에 가야만 노인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세종 때는 노인성 관측을 위해 관리를 파견했고 토정 이지함 등 선비들이 힘겹게 제주에 가 노인성에 대한 글과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라산은 노인성이 임하는 곳이라 해 남쪽 서귀진에 노인성단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이 희귀하고 빛나는 별에 ‘노인’이란 이름을 붙인 게 벌써 2000년 전인데요. 옛사람들은 왜 이 별을 노인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그 이유는 노인을 단지 나이 많은 사람, 육체적으로 쇠약한 존재로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그만큼 경험과 지혜가 높아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마땅히 완전하고 이상적인 인간에 좀 더 가까워진 사람이란 인식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장수는 단순히 ‘오래 살고 싶다’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데서 나아가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까지 포함하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수명의 의미를 ‘노인’에 녹여낸 이유입니다.

18세기 유럽의 근대 임상의학 창시자인 네덜란드 헤르만 부르하페(1668∼1738)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의학사상 최고의 비밀’이란 노트가 뒤늦게 발견됐답니다. 거의 백지였던 노트 뒷부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는데요.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뜨겁게 하며, 몸속에는 찌꺼기를 남기지 마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의사를 비웃게 될 것이다.” 머리가 차고 발이 따뜻하려면 머리는 크고 하체와 발이 작아야 하니 ‘장두단구’한 수노인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 옛어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수성(壽星)

1063년 11월, 북송의 수도 개봉에 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거리를 배회하며 점을 치는 등 사람들은 그의 괴상한 모습에 적지 않게 놀랐다는데.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길어서 몸의 거의 절반이나 차지했다. 도사 같은 복색의 그이는 게다가 엄청난 술꾼이어서 ‘술로 목욕을 할 만큼’ 많이 마셨단다. 결국 이 노인에 대한 소문이 당시 황제였던 인종(1010∼1063)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흥미를 느낀 인종은 노인을 궁전으로 초대, 술 한 말을 준비해 노인에게 권했다. 그러자 노인은 사막이 물을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마셔버렸다. 인종이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노인은 술을 일곱 말이나 비운 다음에 바람처럼 궁전을 빠져나가더니 그대로 행방을 감추었다. 다음 날 천문대를 관리하는 장관이 인종에게 긴급 보고를 했다. “폐하, 간밤에 수성(壽星)이 황좌(皇座) 가까이 왔다가 돌연 사라져버렸습니다. 혹시 어찌된 사연인지 아시는지요?” 그 보고를 받은 인종은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깨달았단다. “아, 그렇다면 어제 그 노인이 수성의 화신이었던가.” 실제 북송의 제4대 황제였던 인종은 즉위한 후 나라가 부강해지고, 많은 충신과 문인을 배출하는 등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후 서하와 전쟁을 치르면서 극심한 경제위기와 더불어 심각한 정치위기에 빠져들었다. 인종 재위 기간 중 번영과 황폐의 전환점이 남극노인성과 크게 연관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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