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EBS에서 고양이 문제행동 개선프로그램인 '고양이를 부탁해'를 방영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양이는 '길들여질 수 없는 동물'이라는 오랜 사회적 인식 탓이다. 하지만 '과연 고양이가 교정이 될까'란 세간의 인식을 보기 좋게 날린 사람이 있다. '고양이 전문가' '냐옹신' 등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한 채 반려묘 행동 교정 현장을 누비는 나응식 원장(그레이스동물병원)이 그 주인공이다.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나 원장은 고양이든 강아지든 아이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려인들도 사람 부모와 똑같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올바르게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의 생태적 습성과 정신 상태를 고려해야 하고 반려동물이 제도적, 의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정부와 의료계, 시민들이 힘을 합쳐 환경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펫교육 열풍 1년도 안 돼...미디어 영향 가속화할 것"
나 원장은 우선 시청자들이 자신을 '고양이 전문가'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도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강아지와 고양이 등 동물들은 생태적 습성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행동의학'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며 "방송 출연 때문에 '고양이 전문가'로 굳어진 게 크지만 고양이와 강아지 모두 치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고양이를 부탁해'가 방송 프로그램이란 포맷상 단기간에 문제 고양이의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이 담겨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란 부담감이 방송 초반에 있었다"며 "다행히 시청자분들이 좋게 봐 주셔서 성과가 났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냐옹신', '고양이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이 3조원을 넘어섰다. 그 중 '반려동물 행동 교정', '반려동물 교육' 상품 및 콘텐츠는 현재 시장을 이끄는 핵심 트렌드로 떠올랐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 등 방송 프로그램은 반려인들은 물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 받는 콘텐츠로 우뚝 섰으며, 그 영향으로 최근 일본 등 해외에 판권을 수출하기까지 했다. 유투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반려동물 주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교육하며 일상을 보내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반려동물 행동 교정이란 개념이 자리잡은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나 원장은 "반려동물도 교육이 필요하구나,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게 만만치 않구나 등 인식이 자리잡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다"며 "영상 콘텐츠와 이를 유통하는 창구의 발달이 반려인들에게 이같은 인식을 함양해주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왜 반려견을 산책시켜줘야 하며, 반려묘에게 캣타워를 설치해줘야하는지 등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반려인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나 원장은 그런 점에서 미디어의 올바른 정보전달이 반려인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실감했다.
반려동물 복지, 정신 건강 돌봄 단계..수의사 책임 커
그는 반려동물이 인간과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수의사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원장은 "수의사 등 동물 관련 전문가들이 학계 내부에서만 학문적 깊이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미디어 활동을 통해 반려인들 혹은 반려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뢰감 있는 정보를 전달해준다면 반려동물 양육과 관련한 사회적 인식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반려동물의 건강과 교육, 행동의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수의사들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무게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수의학계 내부에서도 행동의학 면에서의 연구를 강화하고자 수의사들끼리 스터디를 꾸리는 등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 할수록 반려인들의 사회적 인식이 바뀔 것이고, 그로 인해 반려동물이 받을 수 있는 복지의 질도 오를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인식이 유럽 등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고자 갈등을 겪고 있는 단계라고도 진단했다. "수의사들이 배우는 동물복지 5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가 동물에게 양질의 사료를 먹여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이들이 아프고 병들지 않게 신체적 건강을 돌봐줘야 해요. 신체적 건강이 충족되면 셋째, 이들이 안전히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줘야 하고 넷째, 이들이 불안과 공포를 겪지 않게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본능을 발현하며 살 수 있게 자유를 주는 것이죠."
동물병원 진료비 갈등, 제도-인식 괴리가 낳은 현상
이처럼 수의사들의 책임과 역할의 범위가 커지는 반면. 동물병원 고액 의료비 논란 등 수의사와 반려인들 간 갈등 및 인식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나 원장은 "이같은 갈등은 동물병원이 의료 행위에 매겨지는 가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한 '자율수가제'란 시스템적 문제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식의 괴리 등 정서적인 문제가 복잡히 얽혀 만들어진 현상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려동물 개체수나 진료 및 질환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보험 제도 등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율수가제를 실시하니 반려인들 입장에서는 이게 정당히 의료비를 지불하는 게 맞는건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 건강보험시스템이 매우 잘 운영돼 의료비가 저렴한 사람 의료비와 비교하니 특히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비나 양육비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놀라는 반려인들도 적지 않다"며 "이 때문에 반려인들에게 민간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한달에 10만~20만원씩 자신의 반려동물을 위해 적금을 들 것을 조언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존에 면세 대상이었던 동물병원 의료비가 2011년부터 10% 부가세 대상으로 지정된 점도 동물병원 의료비가 비싸졌다는 인식에 한 몫했다"며 "물건에 매기는 부가세를 동물에게 매긴다는 점부터 난센스인데다 반려인들도, 수의사들도 이 부가세가 어디에 활용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이 부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반려동물을 위한 국가 차원의 보험제도가 마련돼야겠죠. 그러기 위해선 반려동물 등록제를 하루 빨리 활성화하는 등 정부의 정책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동물단체, 수의사 등 전문가들은 정책이 좀 더 빨리 바뀔 수 있게 연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고요, 더불어 반려인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윤리 의식도 함양해야겠죠. 반려인들도 반려동물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한 교육을 받거나 인식을 함양하는 등 마찬가지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네 박자가 복합적으로 맞물려야 반려동물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모두 나아가야 해요."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