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의 근원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조건부 비핵화 의지’는 김일성-김정일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대북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체제안전을 담보한다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선대의 비핵화 유훈을 포기하고 2013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에 따라 핵·미사일 고도화에 주력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이후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전방위적인 대화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선제적인 핵실험과 미사일시험발사 중단 선언과 함께 선대의 비핵화 유훈을 다시 들고 나왔다. 북한이 국가핵무력완성 직후 선대의 비핵화 유훈을 언급하고 조건부 비핵화 의지를 밝힘으로써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한국과 미국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김정은 위원장은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에게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동보적(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단계적·동시적 조치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미국의 조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시행동원칙에 입각한 단계적 일괄타결방식은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에서 시도했던 비핵화 프로세스다. 하지만 당시에는 동결 대 보상방식으로 안보-경제교환이 우선이었고, 체제안전담보를 위한 평화체제 논의는 미뤄두었다.
전격적인 북중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밝힌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에 다소 실망한 듯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합의 서명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협상방식을 관철할 것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북한이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의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단계적·포괄적 접근을 모색하되 압축적으로 시간을 앞당겨 해결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도 미국 본토를 위협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막는 것과 2차 공격능력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억류 미국인 인질을 석방시키면 트럼프 대통령도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면 북핵 협상을 20여 년 동안 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