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않곤 못 배길...붓낚시로 길어낸 인생백신

가나아트센터서 '생명의 시작' 전 연 작가 노은님
정돈 안된 붓질 원초적 색감으로
어린아이처럼 긋고 채워낸 그림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원시생명'
  • 등록 2021-08-27 오전 3:30:02

    수정 2021-08-27 오전 5:28:02

노은님 ‘소풍’(2021), 종이에 아크릴, 78.5×143㎝(사진=가나아트)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원근파괴 구도파괴, 그저 단출한 붓선이 가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 그저 놔두면 그 붓끝에 유형·무형의 생명이 연이어 찍혀 나온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작가 노은님(75)의 평생 화업이 그랬다. 정돈되지 않은 거친 붓질로 단순하게 선을 뽑고, 원초적인 검은 색으로 면을 채우거나 허연 여백은 그대로 뒀다. 혹여 색을 넣더라도 일필휘지 같은 붓선은 살리고 푸르고 노란, 자연의 원색을 입혔다. 물고기를 많이 그려 ‘물고기작가’라고도 했다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사람은 물론이고 고양이·고래·사슴, 나뭇잎·나무·꽃 등 다양하다. ‘콜래보’도 있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 안에선 사람도 동물 같고 동물도 사람 같다. 무심하고 순진하며,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그냥 동화 같은 거다.

유독 관심이 많은 건 ‘크리에이티브’, 원시 냄새가 풍풍 풍기는 거라고 했다. “사람 사는 거나 동식물이 사는 거나, 모두 뭉뚱그려 돌아가는 게 세상이 아닐까”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작품에 수없이 섞여 등장한 사람·동물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거다. 그들이 오늘 함께 ‘소풍’(2021)을 나왔다. 돌아보지 않곤 못 배길, 가슴에 훅 꽂히는 행렬을 만들면서.

1970년 스물셋 빛나는 나이에 간호사 캡을 쓰고 독일로 갔다가 ‘운명적으로 재능을 들켜’ 화가가 됐다. 성공도 했다. 한국작가 최초로 국립함부르크조형예술대 정교수가 됐고, 미헬슈타트시립미술관에선 그이를 기리는 영구전시관을 열었다.

하지만 그 세월이 말처럼 쉬웠겠나. 아마 끝내 붙들고 있던 한 가닥 철학이 버티게 했을 거다. “살아남기 위해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지.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해.” 그래도 그림이 안되는 날엔 낚시꾼과 비교한다고 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면 어떤 날은 많이, 어떤 날은 적게 잡지 않나. 화가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평창로30길 가나아트센터서 개인전 ‘생명의 시작’(Am Anfang)을 열고 있다. 작업 전체를 관통해온 주제 ‘생명’에 초점을 맞춘 작품 30여점을 선별해 걸었다. 전시는 29일까지.

노은님 ‘생명의 시작’(2020), 캔버스에 아크릴, 160×400㎝(사진=가나아트)
노은님 ‘무제’(2003), 종이에 아크릴, 29.7×70㎝(사진=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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