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해체 되었지만 냉전은 여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대한민국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빠뜨린 뒤 러시아를 강타한다. 1999년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냉전은 완전히 종식된다. 미국은 소련과 무력으로 싸우지 않고 50년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0년대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변경한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파트너인 중국과 무역전쟁을 개시한다. 현재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은 냉전시대에 소련과 벌인 비전투적 전쟁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무역 전쟁은 본질적으로 기업을 앞세운 경제 전쟁이다. 각국의 기업들은 치열한 경제적 전투 속에서 자신의 생존과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해 고군 분투중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서 위탁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비즈니스 협력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 내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보안 문제를 감수하고 대만과 중국 파운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이 미국에 설립한 파운드리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보안 유출 걱정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AMD가 그래픽 프로세서 분야에서 화웨이와 관계를 정리하고 삼성과 파트너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삼성의 테슬라 반도체 위탁 생산은 삼성에도 매우 의미가 큰 전략적 결정이었다. 생명과 연관된 제품은 만들지 말라고 했던 선대의 유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피해야한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신속히 마무리하고 실리를 취해야한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서 뒷전으로 밀려있던 아베가 미중 무역전쟁을 이용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청와대가 트럼프와 시진핑 방한 문제로 혼선을 빚는 사이, 트럼프는 지난달 3일간 일본을 방문했고 이달 말 오사카 G20 참석차 다시 일본을 찾는다.
그런데 무역전쟁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LG유플러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를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시진핑 방한을 놓고 하루가 다르게 다른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정부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내부 조율이 안 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정부는 하루 속히 내부 혼란을 정리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