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그 방 안에 내 아내가 있었고, 넌 거기서 (내 아내와) 잔 거야.”
|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컬렉션’의 한 장면. 제임스(오른쪽, 강신구 분)가 아내의 외도 상대로 의심되는 빌(정원조 분)을 향해 칼을 내밀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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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 극단 연극 ‘컬렉션’의 한 장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제임스(강신구 분)가 아내의 외도 상대로 추정되는 빌(정원조 분)의 집에 다짜고짜 들이닥친다. 그러나 빌은 자신은 제임스의 아내를 만난 적 없다며 제임스에게 오히려 되묻는다. “그 여자는 결혼을 했는데 왜 그런 짓(외도)을 했을까? 당신은 그래서 화가 난 거지?”
명확한 정답이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연극 ‘컬렉션’은 다소 당황스럽다. 영국을 배경으로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으로 가득하다. 원작 희곡 작가가 누군지 알고 나면 이 모호함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부조리극’ 대가로 손꼽히는 극작가 해럴드 핀터(1930~2008)의 작품이다.
‘컬렉션’의 등장인물은 총 4명. 제임스와 스텔라(최나라 분) 부부, 한집에서 살고 있는 해리(김신기 분)와 빌이다. 제임스는 스텔라로부터 출장지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실을 알기 위해 해리와 빌의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접하게 된 이야기는 오히려 진실을 미궁 속에 빠뜨린다.
|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컬렉션’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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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무대답게 오밀조밀한 무대가 눈길을 끈다. 무대 왼편에 위치한 해리와 빌의 집은 앤티크한 분위기로, 오른편에 위치한 제임스와 스텔라의 집은 모던한 분위기로 꾸며 이들의 차이를 드러낸다. 음악을 최소화하고 정적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긴장으로 관객이 집중하도록 만드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해럴드 핀터는 1961년 ‘컬렉션’을 발표했다. 그러나 작품 속 등장인물의 모습은 21세기 현대 사회와도 많이 닮아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확증편향’의 모습이다. 작품에선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스텔라가 진짜로 외도를 한 건지, 빌과 스텔라가 진짜 만난 적은 있는 건지 작품은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해리와 빌의 관계는 언뜻 동성 연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확히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등장인물들처럼 관객도 이 작품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연극 ‘전명출 평전’ 등을 만든 변유정 연출이 이번 작품을 이끈다. 변 연출은 “이 작품은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라며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지금 시대를 예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투르기(dramatrugy, 극의 구성과 인물의 해석 등을 도와주는 역할)로 참여한 연출가 김철리는 “삶에는 진실과 거짓이 혼재돼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공연 시간은 90분이지만 극의 전개는 다소 답답할 정도로 정적이고 느리다. 하지만 제임스의 마지막 대사로 막을 내리는 공연의 여운은 깊다. “그게 진실이지? 아니야?” 대답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컬렉션’은 오는 10일까지 공연한다.
|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컬렉션’의 한 장면. 스텔라(왼쪽, 최나라 분)와 해리(김신기 분)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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