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덴마크)=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덴마크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과 고속도로까지 있는 ‘자전거 천국’이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비롯해 앞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등·하교시키는 부모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에게 자전거는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삶의 일부다.
‘자전거 DNA’가 충만한 덴마크에선 늙고 병들어서 더는 페달을 밟기 어려워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해 전 세계 5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이클링 위드아웃 에이지(Cycling Without Age·CWA)’와 함께라면 말이다.
| 지난 5월 24일 덴마크 코펜하겐 뉘하운 인근에서 자원봉사자가 노인 2명을 삼륜자전거에 태우고 산책을 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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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제한 없이 자전거를 탄다는 이 단체의 이름처럼 자원봉사자(파일럿)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자전거를 직접 타기 어려운 노인들을 태우고 ‘함께 자전거 타기’에 나선다. 실제 코펜하겐 여행의 중심인 뉘하운 운하 인근에서도 노인 2명을 삼륜자전거 큰 칸에 태우고 산책하는 파일럿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올레 카쏘(56) 창립자가 11년 전 거동이 힘들어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는 88세 한 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겨 자전거에 태워 나선 산책이 CWA의 시작이었다. 그는 “요양원에서 말 한마디 않던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추억이 깃든 곳을 다니다 보니 입이 트였다”며 “홀로 격리 대신 자전거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쬐고 바람도 느끼면서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효과적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행복하게 오래 사는 데 관심이 많았던 카쏘 창립자는 노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한 관계’이며, 자전거 타기가 도움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일럿이 노인 2명을 자전거에 태우고 달리면 세 사람이 ‘한팀’이 돼 서로 교감하는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올레 카쏘 사이클링 위드아웃 에이지(Cycling Without Age) 창립자가 지난 5월 2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본부에서 ‘함께 자전거 타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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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전거 타기는 ‘1석 3조’의 효과를 낸다. 노인의 ‘이동권’과 ‘외로움’을 해결함과 동시에 파일럿의 삶의 만족도와 요양보호사의 업무 만족도를 함께 높인다. 카쏘 창립자는 “요양원에 계신 한 85세 노인은 좋아하는 공원에 갈 수 있고, 함께 자전거를 탄 파일럿은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면 서로 행복해한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노인이 자전거 산책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져 요양원에 일하는 사람한테도 좋은 영향을 준다”며 “자전거 타기가 단순 운동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자전거를 타는 데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젊다고 파일럿이 되고, 늙었다고 승객이 되는 건 아니다. 덴마크 기준으로 현재 파일럿 중 최고령은 90세, 최연소는 12세다. 카쏘 창립자는 “최고령 파일럿은 요양원에서 승객으로 자전거를 접했다가 파일럿이 됐는데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며 “최연소 파일럿은 엄마 따라 자원봉사를 왔다가 ‘나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해서 참여하는데 다른 세대와 대화하면서 얻는 경험과 지혜가 삶의 자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자전거 타기는 인프라가 아닌 의지의 문제로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독려했다. 그는 “요양원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으니 요양원 3㎞ 반경 내에서 자전거 타기는 문제없을 것”이라며 “빨리 이동하는 것보다 천천히 대화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집중하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기 어려운 노인을 자전거로 태워주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클링 위드아웃 에이지(Cycling Without Age)의 활동 모습(사진=C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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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통·번역 도움=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 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