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도 아닌 내가 콜라병 뚜껑에까지 부처를 그리는 건…"

노화랑서 ‘그대 안의 붓다’ 전 연 황주리
스리랑카 방송여행서 부처 매력에 눈떠
"10여년 전부터 마음 쉬는 시간에 그려"
부처 전시는 처음…1000개 중 일부 내놔
나와 당신의 자화상 '그대 안의 붓다' 등
캔버스·오브제에 그린 모던부처 90여점
  • 등록 2021-05-24 오전 3:30:00

    수정 2021-05-24 오전 10:05:42

작가 황주리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서 연 개인전 ‘그대 안의 붓다’에 내놓은 ‘돌덩이 그림’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전시에는 캔버스회화 외에 2010년부터 10여년 간 그려온 ‘진짜 돌부처’ 작품 15점을 앞세워 세라믹 접시, 콜라 병뚜껑 모형 등 오브제에 그린 그림이 대거 나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얼굴은 영락없이 ‘로봇 태권브이’다. 조각난 철판을 얼기설기 용접해 이어붙인 모양이니까. 머리꼭대기에 폼나게 자리잡았던 조정석은 날려버렸다. 아마 하얗고 노란 백합다발을 얹어내는데 거추장스러웠을 거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가슴에 꽂은 해바라기 두 송이. 말할 수 없는 육중함이 ‘보여서’다. 귀한 부처상을 하나씩 들였으니 말이다.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편하게 누운 와불상과 손끝으로 턱을 살짝 받친 좌불상(‘반가사유상’)이다. 어쨌든 조화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헷갈리는 형상에 붙은 타이틀은 ‘자화상’(2015). 어딜 봐서? 하긴 붓 쥔 이와 닮은 데가 있긴 하다. 안경이다. 그래 안경이 닮았다. 그 두 개의 창을 통해, 나 생긴 것보다 더 황망한 세상을 내다보는 은근한 눈빛도 닮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앞으로 펼쳐질 장면의 전초일 뿐이다. ‘자화상’에서 가슴에 새겼던 부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메인 프로그램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부처가 정신없이 튀어나오는데, 점잖게 수행을 하거나 두 손을 모은 부처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카메라를 든 부처, 붉은 하트를 펼쳐 보인 부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부처, 마이크를 잡은 부처, 헬스장에서 역기를 든 부처, 건물 하나를 가뿐히 손에 올린 부처 등등이 세상을 ‘점령’하는 중이니까.

황주리의 ‘자화상’(2015). 딱딱한 로봇 형상을 한 외형이지만 마음속엔 푸근한 부처를 품고 산다는 뜻일까. 캔버스에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은 전시작 중에선 ‘작은’(80×100㎝) 축에 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난데없는 부처 구경에 정신을 뺏긴 사이 기다리던 그이가 왔다. 중견작가 황주리(64).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에서 개인전 ‘그대 안의 붓다’를 열고 있다. 개인전만도 이미 30회를 넘겨 전시라면 도가 트였다 할 그이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이다. 알록달록 온갖 색을 입은 부처들을 2m는 우스운 캔버스에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두툼한 돌덩이, 콜라 병뚜껑에까지 새기듯 그려낸, ‘부처상의 새로운 창조자’로 나선 일 말이다.

“부처 그림은 10여년 전부터였지만 꺼내놓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간 국내 작가 중 부처 형상을 이토록 적극적으로 드러낸 이가 누가 있었겠나. 박생광 선생 이후론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박생광(1904∼1985) 선생이라. 단청과 탱화, 민화와 무속화란 불교미술과 민간미술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절정의 색채감’으로 완성했던 그이를 말하는 거다. 이쯤 되면 으레 마땅히 받게 되는 질문이 있을 거다. ‘불교 신자인가?’ 그런데 아니란다. 되레 외가 쪽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단다.

골프치고 머리치장에 애정행각도…‘모던 부처’ 행진

남들도 궁금해하던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숱하게 해보기도 했나 보다. “나는 왜 부처를 그리나.” 사실 이 문제는 바로 그 용기가 필요했던 시간의 문제이기도 했다. “일단 좋아서 그린 거다. 오히려 난 범신론적인 스타일이다. 모든 신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다른 게 있다면 종교를 가진 사람과 종교적인 사람의 차이일 뿐.” 그리고 보니 부처일 뿐, 그것이 예수든 마호메트든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황주리의 ‘식물학’(2015). 연꽃과 연잎을 배경으로 그나마 ‘정숙한’ 부처들이 모여 있다. 사는 일의 다채로운 모습을 꽃 속에 묘사한 것은 부처가 아닌 사람의 일상을 심어냈던 예전 ‘식물학’ 연작과 다르지 않다. 개인전 ‘그대 안의 붓다’에 나온 전시작 중 가장 규모가 큰 캔버스회화다(228×183㎝)(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시작’의 계기는 있다. 2008년 EBS에서 진행한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 편에 나섰다가 정말 별별 부처를 다 보고 경험했던 일이다. “이후 부처는 보기만 해도 지겹더라. 돌아다니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형상이 눈앞에 삼삼한 거다. 그때부터 하나둘씩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린 부처상이 1000개는 족히 된다니, 그냥 ‘삼삼’이 아니었던 거다. 그렇다고 그날 이후 부처만 그렸던 건 아니다. 그간의 화업이 말해주듯 작가는 1980년대 한국적 표현주의,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개척한 신구상의 선두주자로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구사해왔던 터. 특히 꽃 안에 우리 사는 모양을 나열하듯 담아낸 ‘식물학’ 연작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였다. 결국 수많은 부처 그림은 ‘특화’가 아닌 ‘연장’이었던 거다. “마음을 쉬는 시간에 즐겨 그렸다. 그러다가 동양에서 유일무이하다 할 보물인 부처를 모던하게 작업해 현대의 성상으로 재창조해보겠다는 데까지 온 셈인데, 그게 취지라면 취지일 거다.”

황주리의 연작 ‘그대 안의 붓다’(2010∼2020) 중 세라믹회화 부분. 어머니가 혼수로 장만했던 접시까지 동원해 부처를 그려냈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황주리의 연작 ‘그대 안의 붓다’(2010∼2020) 중 오브제회화 부분. 콜라 병뚜껑과 숟가락 모형에 부처를 그려냈다. 작가는 “모든 오브제가 캔버스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자화상’ ‘식물학’ 연작 등 캔버스 외에, 단단한 돌덩이와 세라믹 접시, 하다못해 거대한 숟가락 모형 등 각종 오브제에 그린 90여점 전시작은 모두 전시명과 같은 ‘그대 안의 붓다’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작가는 “돌은 오래전부터 수집해온 거고 접시는 어머니가 40년 전 혼수로 사뒀던 것까지 동원했다”며 웃는다. “평소에도 안경부터 시계에까지 그림을 그리는데, 모든 오브제가 캔버스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별의별 장소를 다 기웃거린 ‘그대 안의 부처’들은 ‘그대 안의 인간’들과 다를 게 없다. 골프도 치고, 머리 치장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마스크도 쓰고, 휠체어도 타고, 스스럼없이 애정행각도 벌인다. 술병에 모델로까지 출연한 상황이니, 어쩌다 등장한 얌전한 부처들은 최소한 이 자리에선 얘깃거리도 못 된다. 오히려 종교인이라면 차마 못했을 묘사들이 아닌가. 덕분에 평범한 소시민으로 동화한 부처들은 보는 이들을 몹시 즐겁게 한다. 작가 표현 그대로 ‘모던 부처’의 행진이니까. “종교에선 ‘우리는 모두 부처’란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씨앗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그 씨앗을 담아내자는 생각도 있었을 거다.”

작가 황주리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서 연 개인전 ‘그대 안의 붓다’에 건 ‘식물학’(2017) 앞에 섰다. 작품 오른쪽 위로 카메라를 든 부처, 왼쪽 중간에 빨간 하트를 펼쳐 보인 부처 등 평범한 소시민으로 동화한 그들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예술이란 게 고집의 결정체는 아니야”

기발한 상상력, 망설임 없이 그 상상을 옮겨내는 붓. 이미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유로운 세계에 산다고 믿게 하는 작가가 바라는 한 가지가 의외다. “자유로운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술이 자유롭지 못하면 뭐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되묻는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게 예술가의 자유가 아닐까. 그래서 적어도 전시에선 매번 다른 걸 보여주려고 한다, 진화하고 성장한 어떤 것. 한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예술이란 게 고집의 결정체는 아니지 않은가.”

인터뷰를 끝내고 뒤돌아 나오는 길, 작가가 책 한 권을 쥐어줬다. 2018년에 펴낸 ‘산책주의자의 사생활’(파람북)이다. 글은 물론 삽화까지, 온전히 작가의 펜과 붓으로 만든 책이다. 무작정 펴본 그 안에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없으면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고, 사람이 있으면 살아가는 무대가 되는 밍사산의 모래사막은 내 그림 속에서 ‘그대 안의 풍경’으로 살아남았다”(‘둔황 밍사산을 그리다’ 중).

순간 신호가 잡혔다. 우리 안에 들어앉은 덩어리를 꺼낼 시간이 됐다는 신호 말이다. 작가가 사방으로 쏘아댄 그것은, 부처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를 꺼내놓는 게 중요하다는 장구한 붓신호였던 거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황주리의 연작 ‘그대 안의 붓다’(2010∼2020) 중 흑백톤의 캔버스회화 전경. 생활밀착형 부처들은 이곳에 전부 보여 있다. 마스크를 쓰고 백신을 맞고 골프를 치고 애정행각까지, 우리 사는 일과 다르지 않은 그들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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