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출생[그해 오늘]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준수 외치며 분신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 문제제기…전국적 노동운동 촉발 계기
  • 등록 2022-08-26 오전 12:03:00

    수정 2022-08-26 오전 9:00:34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열사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스물 두 해를 맞은 1970년 한국사회의 노동 문제를 지적하며 분신했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 청계천 버들다리에 위치한 전태일 열사 동상.(사진=뉴스1)
전 열사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에 처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나 봉제 기술을 살리지 못하고 파산했다. 그 때문에 전 열사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사회에 던져졌다.

전 열사는 2남2녀 중 장남이었다. 어려서부터 살림에 보탬이 돼야 했다.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동대문 시장에서 행상일이 시발이었다.

17살이 되면서는 청계천 평화시장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했다. 어려서 배웠던 재봉일을 바탕으로 전 열사는 재봉틀을 다루는 재봉사가 돼 처음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 열사는 자신이 노동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불합리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영세한 규모의 공장들은 비좁은 공간에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하루에 14시간씩 노동을 강요했다. 불빛도 흐릿하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공간이었다.

이 곳의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전 열사와 비슷하게 13살 남짓한 때부터 노동에 내몰린 소녀들이 많았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했지만 초과근무수당은 딴나라 이야기였다.

전 열사는 이들이 처한 어려움에 맞섰다.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업무적으로는 나아져서 처우가 좋은 재단사로 올라섰으나 열악한 환경에서 폐렴을 얻어 해고된 여성을 돕다가 해고되는 일을 겪었다.

전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면서 공부에 천착했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어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주변에 알렸다.

그 덕에 평화시장에서 쫓겨났지만 다시 돌아와 ‘삼동회’를 조직하고 다시 노동문제를 다뤘다. 전 열사는 노동환경을 조사해 청와대와 서울시, 노동청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1970년 11월 13일 전 열사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이는 퍼포먼스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사실상 그의 유언이었다.

병원에 실려간 전 열사는 어머니 이소선씨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젊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비상계엄령'
  • 김고은 '숏컷 어떤가요?'
  • 청룡 여신들
  • "으아악!"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