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20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앞바다. 당시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이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했다. 유조선에 실려있던 원유 1만2547㎘가 바다로 콸콸 쏟아졌다. 태안의 앞바다는 순식간에 기름으로 범벅이 됐다. 태안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큰 물통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다의 기름을 걷어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국내 최악의 유류 오염 사고로 기록된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는 이렇게 시작했다.
죽음의 바다, 9년만에 다시 청정해역으로
사고 당시, 태안의 앞바다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아니 영원히 회생 불능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해안가로 끝없이 밀려드는 시꺼먼 기름을 걷어내고, 바위에 붙은 기름때를 닦아냈다. 동원된 자원봉사자 수만 무려 123만 2322명. 직장인이며, 수험생이며, 심지어 어린 학생까지도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2016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완전한 회복을 인정했다. 그리고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보호지역 등급을 경관보호지역에서 국립공원으로 상향했다. 1년 뒤, 기름띠로 얼룩진 자리에는 ‘유류 피해 극복 기념관’이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이 기념관에는 유출사고 발생부터 청정바다를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만리포 전망타워에서 바라본 만리포해변
만리포해변은 기름 유출 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었다. 기름 냄새가 진동했던 이 해변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변했다. ‘파란 물빛에 곱게 핀 해당화’(만리포 사랑)라는 노랫말이 다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청정해변이 됐다. 북쪽 해변 끝자락에 자리한 뭍닭섬에도 탐방로가 만들어지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아름다운 서해와 울창한 송림, 여기에 해가 질 무렵에는 낙조까지 더해지면 낭만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환상적인 코스로, 마치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만리포 해변 남쪽 끝에는 만리포 전망타워가 들어섰다. 높이 37.5m, 지름 15m로 2층 규모의 전망대다. 타워를 오르면 탁 트인 만리포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 위에 올라서서 만리포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어디에서도 사고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전망타워는 태안의 야경 명소로도 자리 잡았다. 야간에는 각종 조명시설과 레이저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닭섬 탐방로
가을가을한 바람길에서 만난 서정적인 낙조
태안 해변길은 태안의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길이다. 태안의 북쪽 학암포에서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까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도보코스. 워낙 긴 코스라 전체의 코스는 7개 구간으로 나눴다. 그중 마지막 코스인 바람길은 가을 바람을 느끼며 걷기 좋은 길이다. 황토항으로 시작으로 운여해변, 장삼 해변, 장동해변, 바람아래해변 등 안면도의 최남단 해변을 지난다. 각각의 해변으로 가는 길에 작은 언덕이 있지만, 대체로 길이 평탄해서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길을 걸을 수 있다.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최고의 낙조명소로 꼽히는 운여해변의 방파제길
이 길에선 빼어난 해안 풍경에 더해 갯일을 하는 어부와 단단한 백사장을 달리는 경운기, 아늑한 해안마을과 쇠락한 포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안면도 최고라 할 수 있는 낙조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운여해변도 지난다. 해질 무렵에 밀물이 들 때가 최고의 풍경을 선사한다. 운여해변 앞 호수에 서면 방파제의 잘린 끝부분이 마치 솔섬처럼 보인다. 그 뒤로 붉은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단연 압권이다. 여기서 만나는 낙조 풍경의 진짜 절정은 해가 다 지고 난 뒤부터다. 호수처럼 가둬진 물 위로 솔섬과 푸른 어둠의 하늘이 또렷하게 반영되는데, 맑은 날이면 진청색 하늘에 흰 달과 별이 말갛게 걸린다. 운여해변의 낙조도 서정적이다. 운여해변은 앞바다가 넓게 트이고, 지극히 고운 모래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 백사장을 적신 바닷물에 비친 낙조도 가슴 저리게 아름답다.
장삼포는 다른 이름으로 ‘대숙밭’이라고도 불린다. 대숙(고둥의 일종)을 먹은 껍질이 밭을 이루고 있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해안선이 길고 간만의 차이가 심한 장곡리는 과거 염전이 성행했던 곳. 아이들과 함께 염전 체험을 하기 최적의 장소다. 넓은 개펄에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조성된 염전과 소금더미가 빚어내는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만리포전망타워에서 바라본 만리포해변
가슴 먹먹해지는 천년의 숲에 새겨진 생채기
과거 안면도는 소나무가 참 많았다. ‘소나무 섬’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나무의 질도 좋았다. 몸통이 곧고 키가 크며, 재질이 튼튼했다. 바다와 인접해 소나무 운반에도 편리했다. 그래서 고려시대부터 안면도 소나무는 나라의 관리 대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숲’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경복궁을 지을 때 안면도 소나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최근 숭례문 복원에도 안면도 소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
안면도자연휴양림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강제로 송진 채취를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면도 소나무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 대상도 됐다. 일제는 안면도 소나무를 베어내 일본으로 실어 갔다. 지금 안면도에 200살 이상인 소나무가 거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더 어린나무에서는 송진을 채취했다. 전쟁물자인 송탄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일제는 안면도 주민들을 동원해 소나무에 톱날로 ‘V’자형 상처를 냈다. V자형 상처는 저렴하고 손쉽게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일제가 고안한 방식으로,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안면도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갔다.
안면도자연휴양림에는 이런 상처를 가진 소나무들이 아직 제법 많이 남아있다. 휴양림에 들어서면 시원스레 쭉쭉 뻗어 오른 솔숲을 구경할 수 있다. 솔숲 사이로 산책로도 잘 나 있어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특히 스카이워크가 인기다. 키가 큰 소나무 허리 사이로 놓인 ‘하늘길’ 산책로다. 이 길에서는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소나무들에서 뿜어내는 솔향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처 난 소나무들이 제법 많다. 바로 일제의 무분별한 송진 채취로 고초를 겪은 소나무들이다. 그 자리에 서서 당시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제 몸을 통해 일제 수탈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끔찍한 역사의 한순간을 수십년간 참아가며 묵묵히 서 있는 소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서 먹먹해져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