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드디어 ‘미스 함무라비’가 끝났다. 사상 유래 없는 사법 거래의 민낯이 드러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가는 판사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 생활밀착형 법정 드라마
는, 초기엔 먼저 시작한 ‘무법변호사’의 화끈한 액션과 현실 대법원장과 겹쳐 보이는 악마적 판사에 눌려서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법정 드라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서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가 극본을 썼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판사들의 세상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판사들의 자잘한 일상 업무에서부터 법원의 다양한 직업군과 판사끼리의 인간관계나 위계질서를 파악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고등학교 시절서부터 시작된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쫒아가면서 판결에 관련된 사람들의 에피소드까지 꼼꼼히 따라가야 해서 시청자들이 부지런해야만 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방전도 화려한 무법 변호사의 장면과 비교하면 밋밋하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입덕(팬으로 빠져드는 일)이 쉽지는 않은 드라마로 꼽혔다.
하지만 꾸준히 일관성 있게 쌓아 나간 박차오름, 임바른, 정보왕, 이도연, 한세상 등의 캐릭터는 뒤로 갈수록 큰 힘을 발휘했고, 각 판결 에피소드와 함께 등장인물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설정은 판사라는 직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성차별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적 재료로 사용해 대립되는 입장차를 보여주고 또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는데 이는 오랜 판사 경력으로 쌓은 작가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특히 ‘미스 함무라비’가 이룬 성취는 이 비루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끝까지 모색하면서 극중 인물들의 선택으로 일정한 제언을 해냈다는 점이다. 어쩌면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자칫 꼰대 질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낡지만 원칙적인 극작술은, 사법 거래 파동의 충격으로 배신감에 시달리던 시청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했다. 시청자들은 개인의 영전을 노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며 출세한 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끝까지 훼방하며 심지어 보복으로까지 느껴지는 파기 환송을 남발한 법원장에게 받은 상처를 오심으로 판명된 판결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갖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세상을 통해서 치유했고,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강자의 호의를 쫒기에 바빠 유전무죄를 입증하고 있는 판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신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소송 꾼의 최초 패소 기록을 뒤져 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하는 임바른 판사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더구나 여론 재판에 떠밀려 마땅히 해야 할 질문조차 못하는 변호사를 대신해서 피해자에게 질문을 하는 박차오름 판사를 통해 판사라는 직업의 신성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웬만한 드라마가 주는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나직이 묻는다. 당신들은 ‘권리’를 누구를 위해 쓰고 있습니까? 특히 질문할 권리와 들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우리들의 영웅 이야기. ‘미스 함무라비’는 그 제목의 전근대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 법치의 근본 원칙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원의 역할을 재규정한다. 영화 ‘포스트’가 기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작품이라면, ‘미스 함무라비’는 법조인의 꿈을 품고서 로스쿨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드라마이자 교재다. 하긴, 미래보다는 사법 거래를 일삼고도 아직 반성하지 않은 과거 인사들에게 먼저 시켜야 할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전 대법원장은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뭐라고 말할 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