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매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최근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단지를 중심으로 일주일 새 수천만원씩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뛰는 이상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새 정부가 당장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 카드를 꺼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이하 환수제)를 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집값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재건축 단지 중 상당수는 남은 정비사업 일정을 감안할 때 연내에 관리처분계획(일반분양 계획)을 신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올 들어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단지 대부분은 내년 ‘세금 폭탄’이 될 수 있는 환수제 적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권 일부 중개업자들은 환수제 시행이 올해 말 또다시 유예될 수 있다며 수요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단지에 대한 남은 정비사업 일정이나 입지, 가격 등을 꼼꼼히 비교하지 않고 투자에 나서면 폭탄 돌리기식 거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건축 심의 통과 단지가 집값 상승 주도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재건축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 대비 1.87% 올랐다. 이는 강남4구 일반아파트 상승률(0.61%)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달 현재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은 3.3㎡당 4025만원으로 일반아파트(2589)에 비해 1.5배 이상 비싸다.
지난 16일 열린 서울시 건축 심의에서 재건축 설계안이 최종 통과돼 사업시행인가를 앞둔 송파구 신천동 진주아파트 전용 84㎡형의 경우 이달 현재 시세가 11억원으로 두 달 전보다 1억원이나 뛰었다. 서울시와 층수 제한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의 대치동 은마아파트 매맷값 상승세가 주춤한 것과는 딴판이다.
지난달 서울시 도계위 문턱을 넘은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9차 전용 75㎡형도 최고 13억 1000만원으로 한 달 만에 1억원 가량 올랐다. 잠원동 S공인 관계자는 “아파트 매수 희망자 대부분은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보다는 전매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라고 전했다.
◇환수제 시행 땐 ‘세금 폭탄’…“투자 신중해야”
하지만 이들 단지의 경우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올 들어 서울시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도 건축위원회, 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관리처분총회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사업시행인가부터 관리처분계획 신청을 할 때까지 최소 7개월 이상이 걸린다. 이론적으로 이달까지 사업시행인가 단계를 밟지 못한 단지는 사실상 내년부터 시행되는 환수제 적용을 피할 수 없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 아파트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일과 준공일의 주택 가격을 비교해 조합원 가구당 재건축으로 얻는 이익이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을 최대 50%까지 환수하는 제도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집행이 유예된 상태다. 따라서 환수제가 내년 부활할 경우 매수자 입장에서는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곽창석 도시와 공간 대표는 “조합설립 시점의 아파트값과 등기 시점의 시세 차익이 가구별로 모두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 세금이 얼마인지 추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최근 급등하는 시세를 보면 부담금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시장에서는 환수제 적용을 피하고자 일부 조합원이 내놓은 재건축 단지에 대한 폭탄 돌리기식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강남권 중개업소들이 수요자를 대상으로 “환수제가 올해 말 다시 한번 유예될 수 있다”며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단지는 물론 아직 심의조차 통과하지 못한 단지에 대해서도 매수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은 “여건상 내년부터 환수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아직 사업시행인가 단계를 밟지 못한 재건축 사업 초기 단지에 대한 묻지마식 투자는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