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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99년 5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대구시 효목동 한 골목에서 학원으로 향하던 김태완 군에게 정체불명의 남성이 다가왔다. 이 남성은 태완 군의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겨 입을 벌린 뒤 검은 봉지 안에 있던 황산을 들이부어 식도와 얼굴 등을 태웠다.
이는 태완 군이 집으로 나선 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태완 군은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40~45%의 3도 화상을 입고 두 눈을 잃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49일 만인 그해 7월 8일 오전 8시 15분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당시 기도와 식도까지 타내려 간 태완이는 힘겹게 끔찍했던 기억을 되새기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의 초동 대처 미흡
태완 군의 어머니는 경찰이 “태완 군의 말이면 된다”, “태완이한테 물어보라”는 말만 믿고 태완 군이 사건 5일 만에 깨어나자 즉시 캠코더와 녹음장비 등을 직접 준비해 아이에게 틈틈이 질문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픈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 죄스럽다”며 “우리는 부모도 아니다”라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경찰은 6세 아동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부모의 유도 진술에 의한 것이기에 신빙성이 없다며 이를 묵살했다.
또한 태완이의 친구인 현수의 진술은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됐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지능은 일반인과 같았다. 결국 경찰은 말이 어눌하니 멍청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사면초가의 상황을 초래한 셈이 됐다.
사건 발생 4개월 뒤 피의자로 지목된 A씨의 가죽 신발에 황산이 묻은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는 오염된 옷과 함께 보관했기에 증거로서 효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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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만료된 공소시효
KBS ‘추적60분’이 방영된 당시는 살인죄 공소시효 이틀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방송에서는 대한민국 최고 진술 분석 전문가 등 12명이 1개월간 집중 분석을 한 결과 아동이 자신이 보고 느낀 상황을 정확히 증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결과를 들은 태완 군의 부모는 2014년 7월 4일 방송 하루 전, 대구지방검찰청에 유력 용의자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검사는 15년 전과 같이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혐의 결정에도 유가족은 재정신청을 했고 공소시효가 극적으로 정지됐다.
2015년 2월 3일 대구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기각해 유가족은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살인 등 흉악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이 대두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이 재항고를 기각하며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이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는 2015년 7월 24일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작 태완 군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적용될 수 없었다.
특히 공소시효가 끝나기 4개월 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이미 국회에 계류돼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다.
태완 군이 병상에 있던 49일 동안 태완 군의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병상일기를 썼다고 한다. 2000년 사이버주부대학 게시판에 공개된 내용에는 애달픈 마음이 역력했다.
태완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입관식 후 물었다고 했다. “태완아. 안 아프더나?” 이후 태완 군에 입맞춤을 한 뒤 “태완아, 잘 가”라며 아들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