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뭉개진 덩어리서 건진 붉은 백팩…함미나 '무제'

2020년 작
잿빛·초록·붉은… 단 세 가지 색뿐인 풍경화
사실적 묘사보단 감각적 붓질·색으로 승부
뭉치·동작만으로 나눈 대상…기억섞어 재현
  • 등록 2021-07-05 오전 3:20:00

    수정 2021-07-05 오전 3:20:00

함미나 ‘무제’(사진=씨엘아트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자욱한 안개가 무릎 아래는 묻어버린 어느 산의 정상. 백팩을 메고 선 한 사람이 꽤 외로워 보인다. 사람이고 자연이고 형체를 구분할 수 없게 화면에 스며든 전경. 그저 땅과 하늘의 잿빛, 숲을 상징한 초록, 가방이려니 짐작하는 붉은 기운, 단 세 가지 색으로만 그려냈다. 그럼에도 무게감이 배어나온다.

작가 함미나(34)가 본격적으로 회화작업에 뛰어든 건 5년 전인 2016년. 이전까진 삽화작가로 활동했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단 감각적인 붓질과 색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인물을 그리는 작업에서조차 ‘뭉개진 덩어리’가 먼저 보일 정도다. 대상을 그냥 뭉치와 동작으로 나눠버린다는 뜻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다양한 감정이 섞여 낯설게 재현하지만 디테일을 상상하는 건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제’(2020)는 특유의 몽환적인 장면을 극대화한 작품 중 한 점.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풍경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니, 시점을 닫아두지 않은 기억을 이렇게 자화상으로 끄집어낸 게 아닌가 싶다.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150길 씨엘아트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거리’(Distance)에서 볼 수 있다. 물리적인 거리라기보다 작가가 얽힌 추상적인 기억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그 과정을 의미했단다. 캔버스에 오일. 37.9×45.5㎝. 작가 소장. 씨엘아트갤러리 제공.

함미나 ‘무제’(2021), 캔버스에 오일, 37.9×45.5㎝(사진=씨에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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