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화려한 마천루 아래 해송 사이 숨겨둔 '비밀의 해변'

부산 동해남부선 옛 철로를 따라 걷다
청사포가 숨겨둔 미지의 몽돌해변
푸른 뱀의 전설 품은 '다릿돌 전망대'
용이 누워 있는 듯한 '용비늘 소나무'
  • 등록 2019-03-22 오전 1:00:00

    수정 2019-03-22 오전 1:00:00

따스한 봄햇살을 받은 뜬 고깃배가 파도의 결에 묻어 반짝이고 있다.


[부산=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봄 햇볕이 따스하다. 이 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푸른 산들바람을 쐬며 조용한 숲을 걷고, 풀 향기 물씬 풍기는 봄날의 녹음방초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3월 중순 부산의 ‘봄길’을 찾아갔다.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경관 좋은 해안길과 걷기길이 이어졌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짙푸른 봄 바다가 펼쳐지고, 산자락으로는 연둣빛으로 새 단장을 시작한 숲들이 화사한 연분홍 꽃 무리를 품고 다가왔다. 이제 막 슬그머니 싹을 틔운 봄꽃도 만났다. 바람은 차가워도, 오후의 햇살은 푸근하고 눈부셨다. 오고 가는 통통배에도, 낮게 나는 갈매기 떼에도 반짝이는 봄빛이 묻었다.

해뜨기 전 이른 새벽, 청사포 몽돌해변의 몽돌이 파도가 쓸려나갈 때마다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낸다.


◇미지의 몽돌해변, 그 베일을 벗다

청사포 몽돌해변은 1985년 간첩선이 출몰한 이후 군부대가 철조망을 설치하면서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했다.
해운대의 작은 포구인 청사포(靑沙浦). 원래 뱀 사(蛇)자가 들어가 ‘푸른 뱀의 포구’라는 뜻이다. 해운대와 송정 중간 지점에 있다. 해운대 꼬리에 붙어 있는 미포(尾浦)에서 동해남부선 철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청사포다. 여기서 송정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구덕포(九德浦)다. 결국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는 세 개의 포구가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있는 셈이다. 이 세 마을은 동해안 최남단에 존재하는 작은 포구들이다. 이 포구를 걸으며 바라보는 동해의 짙푸른 모습은 따스한 봄날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세 포구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청사포다. 그 이름만으로도 곱디고운 해변과 푸른 모래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청사포 서쪽 끝에는 부산사람조차 모르는 미지의 해변이 있다. 청사포 몽돌해변이다. 무려 30여년간 민간에게 허락치 않아서다. 1985년 10월 청사포 간첩선 사건이 계기였다. 이후 군이 이곳에 철책을 설치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몽돌해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이었다. 부산시가 동해남부선 철도 폐선 부지를 산책로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였다. 당시 사업을 추진하던 부산시는 군과 사업 구간 내 철책을 제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군은 2015년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중 미포~청사포 길에 설치한 철책 1.5km를 철거했다. 하지만 몽돌해변 주변 200m 구간만큼은 군 시설 주변이라는 이유로 철책 제거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몽돌해변은 멀리서나마 모습을 드러냈을 뿐, 발길은 허락치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18년. 군은 ‘통큰’ 결정을 했다. 부산시와 군 당국은 몽돌해변의 전면 개방에 합의했다. 마지막 남은 200m 구간의 철책까지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청사포 몽돌해변은 1985년 간첩선이 출몰한 이후 군부대가 철조망을 설치하면서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했다.


청사포 몽돌해변은 이제 곧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당장 몽돌해변을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와 군 당국은 안전한 개방을 위해 외부 기관에 용역을 의뢰했다. 이 결과에 따라 개방 시기도 결정할 것이다. 서둘러 가보고 싶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 주길 바란다. 야속하게도 청사포 몽돌은 오랜 세월 그래왔듯 파도가 쓸려나갈 때마다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낸다. 그 어떤 악기와 목소리로도 흉내낼 수 없는 천상의 화음이다.

푸른 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 푸른 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다릿돌 전망대’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사포
청사포 서쪽의 몽돌해변은 아직 들어갈 수 없지만, 동쪽은 그 누구의 발길도 거부하지 않는다. 청사포 동쪽 끝에 자리한 다릿돌전망대는 푸른 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유선형 전망대다. 푸른 뱀의 전설은 청사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옛날 포구에 갓 시집온 여인이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매일 바다를 보며 그리워했다. 이에 용왕은 푸른 뱀을 보내 여인을 데려와 남편을 만나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전설 때문에 청사포는 원래 뱀을 뜻하는 ‘사’(蛇) 자를 썼는데, 지금은 ‘모래 사’(沙) 자로 바뀌었다. 이 여인이 멀리 수평선을 향해 눈물지으면서 기다리던 큰 소나무와 그 아래 바위가 지금의 수령 350년의 망부송(望夫松)이요, 망부암(望夫岩)이다.

전망대는 길이가 72.5m에 달한다. 그만큼 바닷속 깊숙이 자리한다는 뜻이다. 기암이 수려한 해안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들어섰다. 뱀의 길쭉한 몸통에 해당하는 S 자로 굽이진 폭 3m의 좁은 통로를 지나자 이내 폭이 넓은 머리 부분에 도착한다. 중간과 왼쪽에는 전망대 끝에 서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전망대 난간 뒤편으로는 조그만 해상 등대가 하나 서 있고, 육지부터 등대까지 암초 다섯 개가 징검다리처럼 가지런히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 ‘다릿돌’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전망대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오르면 푸른 뱀이 바다로 날아드는 듯한 전망대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 서면 다릿돌도 잘 보인다. 청사포 해안에서 해상 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다섯 암초가 징검다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암초 이름을 따와 ‘다릿돌 전망대’로 불린다. 전복이며 멍게, 해삼, 성게 같은 해산물이 많아 청사포 해녀들은 여기서 물질한다. 해녀들의 강인한 삶의 현장인 셈이다.

송정 앞바다에서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서퍼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듯한 ‘용비늘 소나무’

수령이 300년이 넘은 구룡포 용비늘 소나무.
청사포에서 1.5km 정도 송림 속 산허리 길로 계속 걸어가면 마지막 포구인 구덕포에 다다른다. 해운대 끝자락에 있는 미포나, 송정과 청사포보다 가구 수가 많지 않고, 그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라 한적하다. 구덕포에는 300년 수령의 해송이 있다. 구덕포의 당산나무로, 마을 주민들에게 ‘가릿대나무’ 혹은 ‘장군나무’라고 부른다. 땅에서부터 1m 지점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가지와 줄기가 땅 위에 붙어 자라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누운 듯이 자란 이 해송의 길이는 4m에 달한다. 이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다. 해송의 껍질도 ‘거북등’이나 ‘용비늘’처럼 생겨 ‘용비늘소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기이한 모습의 해송을 보고 있자니 정말 거북이나 용처럼 하늘로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방향과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비친다. 금강산의 만물상이 도로 온갖 조화를 부린다면 구덕포의 이 해송은 신묘한 기운을 만드는 것 같다. 마을 주민들은 기이한 형상의 이 해송이 그동안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고 있어 100여년 전부터 신성시해 오고 있다. 주민들은 매년 이 당산나무에서 풍어제까지 지내고 있다고 한다.

구덕포는 송정해수욕장과 바로 이어진다. 이 해수욕장은 부산지역 대학생들의 MT 성지이기도 하다. 해안가 뒤로 큰 방을 갖춘 민박집들이 밀집해 있는데, MT철에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또 이곳에는 예쁜 카페와 길거리 음식들이 많고, 서핑을 즐기기 좋아 연인들이 찾기에도 좋다.

송정해수욕장 동쪽 끝에 죽도공원이 있다. 검고 반들반들한 자갈돌로 이어진 산책길은 둘이 나란히 걸어가기에 알맞은 폭이다. 바위틈에 자리한 송일정이라는 단아한 정자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에 대나무가 자생해서 죽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나무는 몇 그루 보이지 않고 푸른 소나무와 가지가 넓게 퍼진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다.

동해남부선 송정역.


◇여행메모

△가는길=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까지 이어진 동해남부선 폐철도 구간은 바다를끼고 걸어 운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미포와 구덕포, 청사포를 차례로 만나면서 부산 포구의 맛과 멋을 엿볼 수 있다. 거리는 총 4.8㎞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잠잘곳= 부산 해운대는 다양한 숙소가 많다. 유아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파라다이스호텔부산’을 추천한다. 교육놀이 전문가이자 호텔 직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부모들에게 자유시간을 보장해주는 키즈 케어 서비스를 새로 선보였다. 또 최근 문을 연 페어필드호텔은 가성비가 좋은 호텔이다.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객에게 어울린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뒷산에서 만난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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