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중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란 이름을 단 곳이 있습니다. 여러 산업 중 ICT만 떼 내 과학기술과 합친 것은, 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라는 특명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혜택이 기존 산업의 기득권자들과 부딪히면, 혁신이 멀리 도망가지 않게 앞장서 지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과기정통부가 많이 아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신 독과점 해소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공무원들은 납작 엎드렸죠.
“다리가 아파서”라는 핑계로 장관의 세계 최대의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출장은 돌연 중단됐고, KT의 차기 CEO 선임에 관치가 벌어지려 해도 모르쇠입니다. 과거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는 데 역할을 했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KT 차기 CEO로 유력하다는 얘기에도 귀를 닫고 있습니다.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 왔으면 어땠을까요.
데이터플랫폼정부위원회 민간위원이기도 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사장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자주적인(Sovereign)클라우드, 각국 통신사가 주도하는 AI 엔진 플랫폼이 이번 MWC에서 화두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통신을 그저 ‘독과점 상태의 공공재’로만 보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자국 데이터를 넘기지 않으려는 각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죠.
“장관이 부스에 오시면 함께 사진을 찍어 IR 자료에 넣으려 했다”는 스타트업 CEO의 아쉬움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MWC 현지에서 통신사와 함께 5G 특화망 핵심 장비를 국산화해 일본 수출에 성공한 중소기업을 축하해준 것은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었습니다. 통신사 AI를 접목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앱을 선보인 스타트업을 격려하거나, 유럽 당국을 만나 ‘네트워크 투자 공정성’에 대해 정책 토론을 한 것은 야당 의원들이었고요.
혹여 윗분 지시만 잘 따르면 힘이 세지고, 규제 권한이나 조직과 예산이 늘어나면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가 성공할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니길 바랍니다.
과기정통부에 필요한 건 미래 기술 트렌드를 읽는, 기업의 경영 현장과 소통하는 유연한 전문가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이런 분위기를 총리실·대통령실에 전하려는 노력이라고 봅니다.
옛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 출신인 지인은 “민간 기업 KT를 흔드는 노골적인 손이 심하게 작동한 데는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 책임도 적지 않다”면서 “민간 자율, 시장경제 기치를 내건 정부여서 ICT는 가장 잘 어울리는 산업 중 하나인데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과기정통부의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가 대한민국 ICT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