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못 간다” 하던 딸…시멘트에 묻혀 있었다 [그해 오늘]

영어 강사와 제자로 만나 연인으로
폭력 휘두르고 사과한 두 얼굴의 남친
“헤어지자” 한마디에 목 졸라 살해
시멘트로 시신 묻은 후 여행 다녔다
징역 18년…유족에겐 턱없이 모자라
  • 등록 2024-08-14 오전 12:01:01

    수정 2024-08-14 오전 12:01:01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6년 8월 14일, 대법원에서는 ‘시멘트 암매장 살인 사건’을 벌인 20대 남성 A씨에 징역 18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그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18년을 받았고 대법원도 “원심의 선고 형이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확정했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Y 캡처)


◆ 왜 시멘트 암매장이었나


사건은 2015년 5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성 A씨(당시 25세)는 여자친구였던 B씨(당시 26세)를 이날 오후 11시 30분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해했다.

A씨는 범행 후 시신과 며칠 동안을 지내며 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암매장’을 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에 시멘트 사용법 등을 검색했다. 범행 3일 후 차량을 렌트한 뒤 시멘트, 대형 물통 4개, 고무대야 2개, 대형 석쇠 8개 등을 구입했고 B씨 시신을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 렌터카에 실은 뒤 충북 제천의 한 모텔로 향했다.

A씨는 모텔에 묵으며 인근 야산에서 땅을 파고 캐리어를 넣은 뒤 시멘트로 암매장했다. 그런 그는 B씨를 위해 술을 올리기까지 했다고. 이후 그는 2주간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등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5월 18일 오후 12시 40분. A씨는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김 씨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술을 마시고 손목을 긋고서 경찰에 자수했다.

그가 자수를 한 이유는 B씨의 아버지에게서 전화 및 메시지 등을 받으며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범행 후 A씨는 B씨 가족과 지인을 속이기 위해 B씨의 메신저 말투 등을 따라하며 메신저 답장 등을 보냈고 이모티콘 등을 섞어 B씨 동생과도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나 얼마 안 가 이는 들통날 수 밖에 없었다.

B씨 아버지는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딸이 “못 간다”고만 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 주로 있던 딸은 한국에 있을 때면 달려왔었다. 이에 B씨 아버지는 “그럼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당분간 바빠서 좀 힘들 것 같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B씨 아버지가 더더욱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같은 달 15일 B씨가 입사한 회사에서 ‘무단 퇴사’ 내용증명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억대 연봉 계약으로 입사가 결정된 뒤 딸은 “첫 월급 타면 500만 원을 드리겠다”며 좋아했었다. 놀란 아버지는 딸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급한 일이니 전화달라”는 메시지에도 응답이 없었다.

회사 측은 B씨가 5월 4일 ‘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가려고 한다. 퇴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A씨가 B씨 살해 후 15일간 B씨의 휴대전화로 벌인 것이었다.

(사진=MBC 리얼 스토리 눈 캡처)


◆ 왜 B씨를 죽였나


두 사람은 2014년 초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B씨는 뉴욕 명문대를 조기 졸업 후 동생들의 학비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와 부산의 한 영어 학원에 강사로 입사했다. 당시 A씨는 서울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려다가 실패했고 이후 영어 공부를 더 하겠다며 부산으로 내려와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강사와 학생으로 자주 만나며 호감을 갖게 됐고 만남으로 이어졌다.

A씨의 친구들은 그가 자상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자친구에게는 집착이 심하고 상습적으로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일례로 학원 회식으로 B씨가 연락을 하지 못하자 자던 B씨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때렸다.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고 공개된 B씨 친구와의 통화에 따르면 B씨가 “애들이(학원생)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

A씨의 폭력에 B씨가 헤어지자고 하면 A씨는 애걸복걸하며 빌었다.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진 A씨의 행각은 반복됐고 이들은 이별과 만남의 악순환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졌다. A씨와 B씨가 다투는 과정에서 B씨가 “헤어지자”며 이별을 통보했고 이날 B씨를 쫓아간 A씨는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 지킬 앤 하이드

김병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A씨를 ‘지킬 앤 하이드’에 비유했다. 폭력을 동원할 때에는 공포스럽지만 사과를 하기 위해선 180도 다른 인물로 변하는 것이라고 A씨를 파악했다.

또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으로 이뤄진 의도적 살해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B씨는 친구들에게 평소 “(A씨가) 너무 폭력적이다 무섭다”, “외국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무서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A씨는 경찰에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암매장한 장소에 대해서는 “명당인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재판 동안 36차례 반성문을 내며 자신의 감형에 힘쓴 그는 1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발견 당시 시신이 부패했기 때문에 내가 목 졸라 살해한 증거가 뚜렷하지 않고 B씨의 사망 원인은 천식이다. 나는 시신 유기만 했다”고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징역 18년을 확정했지만 유족에게는 턱없이 모자른 형량이었다.

“매일 울다 지쳐 잠든다”던 B씨의 어머니는 재판 내내 딸의 영정사진을 눈물로 훔쳤다.

B씨의 아버지는 언론에 “딸에게 사람 보는 눈을 키워주지 못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만 이야기했던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난다”며 “딸이 죽기 전까지 폭행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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